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김희중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평화를 지키는 것은 첨단병기가 아니라
만남과 대화입니다 ”

다시 남북 간 단절이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종교계는 단절의 시기마다 앞서서 이음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해 왔다. 김희중 대주교는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해 북한사람을 만나고, 또 우리 사회 각계각층을 만나며 화해와 평화의 가치를 한반도 곳곳에 전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가 전하는 가치는 오직 ‘평화’이다. 그는 평화를 만드는 것은 첨단병기가 아니라 대화와 신뢰라고 말한다. 우리가 주도하는 영속성 있는 평화를 위해 남북이 다시 만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2019년 한 해 한반도 평화 만들기가 지체되는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반도의 평화가 남북만의 문제라면 단순하게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배경으로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참 염려스럽습니다. 우리와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를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우리와 동맹이 아닌 나라를 배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어렵지만 남북의 평화통일 의지가 확고하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민족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대의명분에 공감한다면 정치적인 계산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2019년 한 해가 저물기 전에 남북이 신뢰관계를 회복하여 진지하게 우리 민족의 운명을 위한 협치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올해 남북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북제재와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이 컸습니다.

사실 유엔 제재는 결국 미국의 제재예요. 인도주의 차원의 교류협력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안 되고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대북제재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묘장의 비닐하우스 만드는 파이프도 무기를 만들 우려가 있다고 제재 대상에 포함됩니다. 파이프는 강도가 약해서 무기가 될 수도 없어요. 만약 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었다면 남한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한반도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럼 자연히 한반도는 미국과 긴밀히 연결되고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가와도 긴장이 아닌 협력관계로 전환될 것입니다. 미국의 이익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경 제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북한도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고요.

지난해 9월 3차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오셨는데, 평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2011년 이후 네 번 정도 평양을 방문했는데 처음 갔을 때보다 거리가 많이 밝아지고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특히 여러 군데 장마당이 들어서 시장을 통해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는 아니지만, 배급에 의존하기보다 시장을 통한 거래가 활발하다는 점에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또 인상 깊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 15만 명 앞에서 한 5.1경기장 연설이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 것을 김정은 위원장과 확약했다고 하면서 “우리민족은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 동안 헤어져 살았다.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발걸음을 내딛자”고 했습니다. 이에 평양 시민들이 열렬히 환호하고 박수 치는 것을 보 며 이것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북 모두가 평화를 열망하는데 주저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저하지 말고 다시 만나야 합니다.

앞으로 북한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번 평양에 가서 느꼈던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의외로 소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찬 중에도 서슴없이 일어서서 함께 사진을 찍고 백두산 천지에서는 본인이 나서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한번은 제가 “스위스에서 오래 생활한 경험을 살려서 북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잘 활용하면 번창할 겁니다”라고 말했더니 웃더라고요. 민주주의 국가인 스위스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개방적이고 소탈한 면이 있는 만큼 북한이 잘살기 위한 길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두면서 좀 더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경제 질서로 나아가려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상과 달리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지체되면서 북한 내부에서도 저항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사실일 겁니다. 2017년 9월에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제가 로마에 있었는데, 저와 인터뷰를 하고 있던 기자가 곧 전쟁이 날 수도 있다면서 한국에 돌아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이렇게 살았다, 절대로 전쟁은 안 일어난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핵을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건 아닐 것입니다. 핵무기를 쓴다는 것은 남·북·미 모두 다 죽자는 이야기거든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자신들이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생각해요. 대외적으로는 우리도 이런 기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내부적으로는 인민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도 평화를 원하고 경제 발전과 체제 보장을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반복되면서 우리 내부에서도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와 회의적인 시선이 커지고 있습니다.

평화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인간의 존엄성, 품위, 양심, 윤리, 도덕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1년간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몸소 느낀 것입니다.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서 동물적인 정글의 법칙으로 떨어집니다. 전쟁을 막기 위한 비용을 일부에서는 ‘퍼주기’라고 비판하지만 이것은 평화를 위한 투자입니다.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독의 끊임없는 경제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답답하고 괘씸해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북이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외세에 의해 평화가 정착된다면 그 평화는 불안정한 평화일 겁니다. 과거의 역사가 곧 교훈입니다. 외세의 결정적인 역할로 인해 해방을 맞이한 결과 남북은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남북 평화는 이제 우리 스스로 역량을 길러서 지켜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은 신뢰를 형성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구실로라도 서로 만나야 합니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첨단 전자병기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상호 신뢰 구축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를 만들 때 영속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고비마다 종교계는 앞장서서 남북교류의 물꼬를 텄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교계는 어떤 역할을 해왔습니까?

종교인들은 정치적 계산이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순수한 동기에서 인도주의적 교류협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남북한 종교인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인도주의적인 교류협력을 하겠다면 유엔이나 미국도 대북제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이름으로 세계 종교단체에, 천주교는 미국 가톨릭주교회의에 성원과 기도를 호소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각 종교의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성원과 기도를 지속해서 호소하려고 합니다.

남북문제는 이념갈등과 정쟁화가 심합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한 대의명분에는 모두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적인 태도에 집착하면서 또다시 민족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좌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든 보수든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고 이것을 발전시켜 나가려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양쪽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이분법적으로 접근해요. 어떤 정치인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데 이것은 정말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반도 문제를 정치도구로 삼지 말고, 평화로운 나라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에서도 정책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평화의 가치와 필요성, 전쟁의 참상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공감대를 기반으로 평화 프로세스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직접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평화교육입니다”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금강 산 신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자는 명목으로 만나고, 장충성당을 신축하자는 명목으로 지원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이 만나고 물자가 오가면서 교류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의 길이 터지면 미국도 이익입니다. 미국의 물류가 중국, 러시아, 유럽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고, 미국 굴지의 회사들이 북한 내에 투자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경제공동체가 한번 커지면 쉽게 평화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부족한 면도 있겠지만, 올바르다고 확인되는 것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한길을 갔으면 합니다.

“평화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인간의 존엄성, 품위, 양심, 윤리,
도덕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1년간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몸소 느낀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가 꼭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국민들이 평화를 갈망하고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에도 가까이 가보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평화로운 나라의 국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봐야 해요. 제가 1976년도에 로마로 유학을 갔던 시절, 그때만 해도 반공 교육이 심해서 공산당은 전부 머리에 뿔 난 것처럼 말하고, 북한의 쪽지 하나만 봐도 바로 신고해야 했어요. 그런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살다가 로마에 갔더니 너무 평화로워서 저절로 숨이 쉬어질 정도였습니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평화 교육이 필요합니다. 나이와 수준에 맞는 교육 자료를 만들고, 남과 북이 함께 만나고 교류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합니다. 북측의 예술인을 초청해 그 작품을 전시한다거나 남북 학생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만나야 합니다. 직접 만나고 교류하고 보는 것만큼 좋은 평화교육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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