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차가워진남북관계와
다시 보는 ‘쌍중단’

반환점 돈 문재인 정부와 남북관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2017년 12월 19일의 한미군사연습 연기 제안을 빼놓고 다른 것을 논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이래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꾸준히 요구해 온 ‘한미군사연습 중단’ 조치에 대해 언급하며 2018년 한미군사연습을 연기할 것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다가오는 평창 올림픽에 즈음하여 휴전 조치를 실행하자는 것이었다. 당연히 주요 언론들은 발칵 뒤집혔고,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한미연합사의 브룩스 사령관이 동맹의 합의가 있다면 연기도 가능하다고 동의함에 따라 사태는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이어진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창 겨울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며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화답했고, 1월 4일 트럼프 대통령마저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올림픽 기간에 군사 훈련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셔도 된다”며 평화 릴레이에 동참함으로써 2018년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이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5.1경기장 연설은 그야말로 평화와 통일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현장에서든 방송을 통해서든 이를 보고 있던 모든 이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할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가슴을 울린 7분이었다. 불과 1년 전인 2017년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한반도를 흔들고 위기의 나발을 불어대던 그때를 생각하면 ‘1년 만에 이렇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까’라는 경탄을 자아냈다.

북한의 작지만 큰 불만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2017년 그 가을 찬바람 앞에 놓여 있다. 심지어 북한은 지난 10월 25일, 금강산에 국제관광지구를 새롭게 건설하겠다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를 공개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불발된 이후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반기 내내 증폭되어 왔지만 8월을 넘어서면서 더욱 심해졌다. 8월 한미군사연습이 끝나면 북한이 대화로 복귀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한국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난해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5.1경기장을 찾아 평양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

북한은 10월 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국과의 대화도 ‘결렬’이라고 선언해버렸다. 당시 논의된 많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김명길 북한 대표는 야간 조명 빛 아래 결렬 선언을 읽어갔다. 당일 논의된 내용과 무관하게 준비된 북한의 성명을 듣던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노이 회담의 잔혹 복수극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2016년을 즈음한 남북관계는 역대 최악이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 이래 한국은 남북 관계를 돈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향에 빠져 있는 듯한 행동을 일삼았다. 심지어 북경에서 이루어진 남북 당국자 간 만남에서 북한 관계자들에게 돈을 쥐어 주다가 언론에 공개되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각종 탈북 행렬을 불필요하게 공개하거나 과장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3대 세습이라는 정치적 불안정성을 손 놓고 볼 수 없다는 공안 논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관-언 합작의 비이성적 선동이 대북제재 강화론과 북한 붕괴론을 불러댔다. 그 결과 북한을 ‘악마화’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러던 와중에 우리 스스로도 북한의 광기(Mad Man)에 깃든 그 나름의 합리성(Thin Rationality)마저 읽을 수 없게 되는 도덕주의적 광분(Thick Irrationality)과 자아도취에 빠져들었다.

2010년 5·24 조치에 이어 2016년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등은 자승자박(Tying Hands)의 결기를 보인다는 명분 아래 자해공갈적 대북정책으로 치달았다. 우리 기업과 우리 경제의 손해를 무릅쓴다는 점에서 ‘자해적’이었고, 북한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줘 북한을 굴복시킨다는 비현실적인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갈’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억제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이후의 5차, 6차 핵실험이라는 더 큰 도발을 초래했다. 한중관계 악화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까지 이어진 것은 말할 나위 없었다.

이즈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다음 전쟁 대상이 북한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수인계하고 있었고, 2017년 예의 ‘화염과 분노’와 ‘괌 포위사격론’이라는 북·미 공방은 그렇게 계속된 것이었다.

쌍중단 현실화한 2018년

앞서 보았듯이 북한의 주장은 분명하다. ‘쌍중단’이라는 대전제 하에서만 비핵화-평화체제라는 쌍궤 병행적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쌍중단은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발사 중단 조치에 대해서 한국과 미국이 한미군사연습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2018년 남·북·미 협상은 사실상 3월과 8월 두 차례의 한미군사연습이 중단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반면 2019년 한미군사연습이 재개된 이래 남·북·미 관계는 파탄에 파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2월 20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에서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가 열렸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로 가는 길을 만들었듯, 도쿄 올림픽 휴전을 제안하면 어떨까. ⓒ연합

전작권 반환을 서두르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한미군사연습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2년의 전작권 연기 조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한미 간 군사연습이 필요하다. 한미군사연습 연기 불가론이다. 소규모 대대급 연습과 지휘소 훈련 개념의 군사연습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는 불분명하다. 범위와 종류를 정하지 않고 모든 군사연습을 중지하라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연습 없는 군대가 의미 없다는 점을 돌이켜본다면 그것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의미한다. 우리가 군사연습을 중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2018년의 상황을 돌아보자. 그 중심에 평창 올림픽이 있었다. 올림픽 휴전은 평화 올림픽의 정신이었고 국제사회의 합법적 규범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올림픽 휴전을 제안했고 그 일환으로 군사연습을 연기하여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쌍중단을 현실화하여 실행에 옮겼다.”

2020 도쿄 올림픽 휴전을 제안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군사연습을 중지하는 것은 금기영역인 것만은 아니다. 2018년의 상황을 돌아보자. 그 중심에 평창 올림픽이 있었다. 올림픽 휴전은 평화 올림픽의 정신이었고 국제사회의 합법적 규범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올림픽 휴전을 제안했고 그 일환으로 군사연습을 연기하여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쌍중단을 현실화하여 실행에 옮겼다.

2020년은 도쿄 올림픽이 있는 해이다. 7월 도쿄 올림픽을 전후하여 한반도에는 두 번의 한미군사연습이 예정되어 있다. 3월에 예정된 한미군사연습에 북한이 2017년 이전처럼 대응하기 시작한다면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는 다시 한번 화염과 분노의 길로 갈 것이다. 8월에 예정된 군사연습기간에 북한이 강경도발에 나선다면 도쿄 올림픽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북한의 전력은 동북아를 자신의 전역으로 만들고 있고, 지난 7월 선보인 3,000톤급 잠수함과 10월에 드러낸 사정거리 2,000km를 넘는 북극성 3호는 도쿄 올림픽을 겨냥한 무력시위의 초입으로 보인다.

차라리 이 판에 우리가 나서 도쿄 올림픽 휴전을 제안하면 어떨까? 평창 올림픽을 맞아 올림픽 휴전을 통해 평화로 가는 9·19를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이웃 나라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2020년, 다시 한번 올림픽 휴전을 선언하고 나서자는 것이다. 그 길이야말로 남·북·미·중에 일본까지 평화의 터전으로 끌어들이는 창의적 대로이다. 그리고 1년 반 뒤 겨울이면 다시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다. 그렇게 되면 결국 2018년, 2020년, 그리고 2022년 격년으로 한반도에 올림픽으로 인한 휴전이 반복될 것이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우리가 먼저 내달리는 게 맞을 성싶다. 좌고우면하지 말자. 금강산이고 개성이고 심지어 9·19도 그 시작은 쌍중단이지 않을까?

이정철 이정철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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