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산책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한글

지난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던 이들은 통역 없이도 두 정상의 말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한 번이라도 외국어로 소통해본 사람이라면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알 것이다. 같은 말, 같은 글은 수십 년 분단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매개체가 됐다. 2019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서울에서 한글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세상 모든 소리를 담아내는 백성의 글자

한글의 흔적을 찾는 여행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한글의 창제 원리, 한글의 역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각종 문화·교육프로그램과 한글을 담은 기념품,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오감으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한글놀이터, 외국인과 다문화 주민을 위한 한글배움터와 한글 전문 도서관까지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과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만날 수 있는 것은 한글의 제자 원리다. 5개의 기본 자음(ㄱㄴㅁㅅㅇ)과 3개의 기본 모음(ㅣ.ㅡ)에 가획과 합자의 원리가 더해져 28자의 소리글자가 만들어졌다. 28개의 소리글자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글자는 무려 11,172개. 세상 어떤 소리라도 담아낼 수 있다는 한글에는 단순함 속에 정교한 논리가 녹아 있다.

한글이 등장하기 전, 언어는 곧 권력이었다. 문자는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배움의 기회가 적은 백성들은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고, 누명을 써도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었다. 문자를 모르니 책을 읽어 법 과 질서를 깨치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임금이 일찍이 진주사람 김화가그 아비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라 낯빛을 변하고는 곧 자책하고 세상 풍속이 박악하여 심지어는 자식이 자식노릇을 하지 않는자도 있으니, 효행록을 간행하여 이로써 어리석은 백성들을 깨우치려고 한다. (세종실록42권, 세종10년 10월 3일)

1428년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세종은 자신이 부덕한 탓이라며 백성들에게 예와 법을 가르치기 위해 옛사람들의 일화를 담은 효행록을 만들라고 명한다.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들은 그림과 설명을 곁들인 <삼강행실도>를 제작해 반포했지만, 백성이 글을 모르니 그 역시 헛수고였다.

이에 세종은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에,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을 만큼 쉽고 논리적인 문자를 만들기에 이른다. 바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이다. 한글은 단순히 글을 모르는 백성을 긍휼히 여겨 문자를 알려주기 위한 것을 넘어 백성들이 스스로 배우고 예와 법을 깨우치게 하여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던 경복궁이 있는 세종대로 일대에는 한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한글가온길’이 조성돼 있다. 광화문 광장과 세종문화회관, 한글학회, 주시경마당을 빙 둘러보는 코스로, 길지는 않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글을 주제로 한 조형물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열리는 행사와 집회,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광화문 광장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으로 돌아가면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는데, 광화문 광장 아래에 숨은 공간이다. 이곳에는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 관련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공간은 대형서점과 세종문화회관으로도 이어지니 시간이 날 때 한 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다.

한글박물관

뛰어놀며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한글놀이터

한글을 소재로 한 상품들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니…

1446년 반포된 한글은 점차 여러 영역에서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종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던 것에서 외국어 학습 같은 실용적인 분야로 번져갔고, 문서와 편지, 문학, 생활용품에도 차츰 한글을 사용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맞으며 수난을 겪은 민족과 함께 한글도 위기를 맞는다.

당시 수많은 국어학자과 연구단체들이 일제의 탄압에 맞서 한글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어 음운과 문법을 연구하며 한글 대중화와 근대화에 힘썼던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다. 세종문화회관 뒤뜰에 있는 한글조각공원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한글학회 건물과 주시경 선생의 집터, 작은 공원에 조성해 놓은 주시경 마당을 만날 수 있다.

주시경 선생은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말과 글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말모이> 제작으로 이어진다. 경술국치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말모이 편찬 작업은 순탄치 못했다. 편찬자들의 사망과 망명, 구속, 일제의 탄압 등으로 처음 작업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흐른 1947년에야 비로소 『조선말 큰사전』 1권을 출간할 수 있었다.

주시경 선생의 집터 옆에 조성된 주시경 마당에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부조와 조형물이 있다. 천천히 둘러보다 보니 외국인의 부조 하나가 더 눈에 들어온다. 바로 선교사이자 육영공원 교수였던 호머 헐버트. 그는 고종의 최측근으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에서 대화의 창구역할을 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도왔다.

그가 주시경 선생과 나란히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한글에 대한 각별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한글에 능통했던 헐버트는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우수성을 연구했고, 한글을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추방된 헐버트는 해방 후인 1949년 방한 후 1주일 만에 병사해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시대와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언어

수많은 이들이 고난과 희생을 자처하며 지켜낸 한글은 이제 문학으로 시로 노래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꾼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자하문 고개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가압 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돕는 시설이다. 삶에 지치고 상처 입은 영혼에 위로와 다독임을 주는 영혼의 가압장이 되겠다며 만들어진 윤동주 문학관에서 사람들은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마음을 위로 받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윤동주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도쿄 유학길에 올랐다. 학업 도중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스물여덟 생을 마감했지만,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시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쉰다.

윤동주의 시에서는 억압받는 시대에 태어나 글 외에는 자신을 표현할 수단이 없었던 답답함이 묻어난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시대를 뛰어넘어 시인의 시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언어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이러한 힘이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동질감. 남과 북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같은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쓰는 한 서로 느끼는 마음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다. 언젠가 남과 북이 자유롭게 만날 그날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지켜야 한다.

한글가온길

세종문화회관 뒤뜰 한글마당에 조성된 조형물

윤동주 문학관 제1전시실 ⓒ윤동주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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