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IN

변화 더딘 북한 방송
남북 협력 통한 변화 기대

드라마는 ‘방송의 꽃’이다. 북한 조선중앙TV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많이 방영했다. 2000년대 초에 방영된 <붉은 소금>, <열망>, <대하는 흐른다>, <석개울의 새봄>과 같은 드라마는 지금 봐도 잘 만든 작품이다. 이 드라마들은 북한 주민들을 TV 앞에 둘러앉게 만들었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도 볼 만한 것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조선중앙TV는 볼 만한 프로그램을 잘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사회경제 변화에 따라 예전보다 ‘옷 전시회’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하고 있지만, 주민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족함을 외부 영상으로 채우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에 방영된 중국 드라마 <잠복>을 들 수 있다. 30부작으로 방영된 <잠복>은 1940년대 중국공산당원의 항일투쟁을 보여주는데, 그 흥미진진한 전개가 북한 주민의 드라마에 대한 안목을 한 차원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으로 보인다.

재미보다 사상교양 프로그램 중심

지금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경쟁력을 가진 우리 방송사들조차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쉽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최고권력자에 대한 선전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조선중앙TV를 북한 방송의 중심에 두고 있다. 최고권력자에 대한 선전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재미있는 오락프로그램보다는 사상 고양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 중심으로 방영된다. 2000년대 초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화질도 개선됐지만,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 수준과 비교하면 조선중앙TV는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 경제는 주변국과 비교하면 매우 열악한 수준에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를 지나고, 2000년대를 맞은 후 20년이나 버텨온 북한에는 두 가지 큰 사회적 현상이 공존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현대사회의 최첨단 장치인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맨손으로 힘들게 노동한다. 북한 주민들은 21세기 첨단기기와 20세기 전반의 열악한 생활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시청자 수준도 높아져

2008년 말 무렵부터 스마트폰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북한 주민은 이전과는 다른 생활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단순한 통화에 사용되던 휴대전화가 복합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교체되면서 북한 주민은 새로운 정보 환경에 접어들게 됐다. 이미 2000년대 초부터 VTR과 DVD, 노트텔 등을 가지고 외부 영상을 접했던 북한 주민들은 현재 반신불수 상태인 자신들의 스마트폰이 제대로 기능하기를 원한다. 그들도 조선중앙TV의 일방적인 교양·선전 방송에 만족할 수가 없어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와 방송을 보고 싶어 한다.

폐쇄적인 체제 속에서 조선중앙TV는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고난의 행군을 벗어나 자유경제시장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조선중앙TV는 과거의 체제 위기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최고권력자가 방송 프로그램의 주인공 역할을 계속하고 있고, 주민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은 빈약하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선전 방송이 반복되는 것은 늘 있던 일이지만, 그 프로그램들이 매우 지루하다는 것을 방송 관계자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조선중앙TV를 보면 북한 주민과 어린이들의 복장과 표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표정은 예전과 비교하면 특히 다르게 느껴진다. 평양의 비교적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다양해진 것은 그만큼 사회가 어린이들을 여유롭게 돌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의 표정처럼 북한주민들이 보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조선중앙TV에서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최고권력자의 선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한주민들, 특히 평양 주민이나 지방도시의 상위계층은 영상에 대한 문화적 갈증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이런 사실은 2000년대 초 남북교류나 탈북자 증언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 북한의 활동적인 주민들은 북한 외부 영상물을 시청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선중앙TV가 채워줄 수 없는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고 있고, 그 수준이 이미 상당히 높아져 자체 제작 프로그램만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지금의 조선중앙TV가 매우 결핍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한정권과 북한방송의 어쩔 수 없는 암묵적 합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의 평화 관계가 진전돼 남북한의 경제협력과 문화교류가 확대된다면, 북한의 방송은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집에서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연합

이주철 이주철
KBS 연구위원,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