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통일 | 여행이 문화를 만나다

봄 산 찾아 내게 오시려거든, 강원도 오대산

이것도 실은 네게로 가는 여러 길목의 한 주막쯤인 셈이요
<나태주 –봄날에>
봄이란 그런 것이다. 보이는 자리마다 연두빛 새순에 지천이 푸른빛인데도 아쉬워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 그저 설레고 이유 없이 그리워진다. 그대는 바람으로 오는가, 목덜미에 내려앉는 봄볕으로 오는가. 나는 지금 그대를 만나러 간다. 우리가 만날 곳은 새소리가 들리는 전나무 숲이었으면 좋겠다. 숲에는 바다 같은 아득한 하늘이 숨어 있는데, 그대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그대 향해 떠난 나도, 그리고 돌아올 그대도 건강하고 행복해졌으면. 바야흐로 봄이다.

상원사 문수전

봄볕이 머물러 꽃으로 피어나고, 오대산 상원사

오대산 전나무숲

분홍 연등이 가득 핀 상원사 경내 오대산을 감싸 안은 듯 뒤덮은 전나무 숲으로 발을 들인다. 이효석도 이 산을 걸었을 것이다. 《산》에서 삶에 지친 자가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듯,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쉬고 싶다. 숲은 가도 가도 나무, 걱정 없이 무럭무럭 잘들 자라는 나무밖에 없다. 어린 나무와 늙은 나무가 뒤섞인 사이 군데군데 뚫린 하늘은 바다처럼 깊고 푸르다.

숲길을 따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사람들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려고 심산(深山)까지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어딘가 젊어지는 샘물이 숨겨졌을 것도 같은 비밀스러운 숲이다. 무엇이건 치유할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가득하다. 싹트는 데 필요한 힘은 우주를 통째로 드는 힘과 같다는데, 숨만 들이마셔도 아프고 그리워하던 빈 곳이 채워지는 듯하다.

상원사에서 내려다본 오대산 능선 오대산은 오래전부터 병들고 지친 마음을 치유하던 장소였다. 본디 상원사는 600여 년 전 세조가 요양하던 곳이었다. 상원사 입구에는 허리높이 만한 석조물이 있는데 이는 ‘관대걸이’라고 전해진다. 세조가 여기에 관대(冠帶)를 벗어두고 몸을 씻었는데, 불치의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이곳에선 무거운 옷도 마음의 칼도 내려놓는 자리인 듯싶다.

상원사는 거대한 꽃송이처럼 돌계단 끝에 올라앉아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상원사부터 이어진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 곳곳이 분홍 연등으로 물들어 있다. 세상 걱정을 잠시 놓았더니 바람에 은은한 풍경소리가 들려온다. 다사로운 햇볕은 모르고 두었던 생채기까지 아물게 하여 어느새 몸이 가벼워진다. 온전히 좋은 날이다.

조국의 봄날을 예감했던 자취, 경찰전적비부터 봉산서재까지

내가 여기 있는 건 저만치 앞서 지켜주던 누군가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근본을 찾아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 나의 기원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그다지 먼 곳을 찾지 않아도 된다. 이 땅은 사방이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의 순결한 땅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 경찰 전적비의 모습 해발 960m 오대산의 진고개에는 바람을 견디며 기념비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무궁화의 다섯 꽃잎을 형상화한 경찰전적비. 6·25 격전지였던 오대산 기슭을 목숨 걸고 지키던 평창경찰서의 경찰들을 기리는 비다. 지금도 민족의 운명을 구하고자 산화한 넋들의 맥동이 발밑에서 뛰는 듯하다. 자신을 버리고서라도 민족을 지킨 정신. 그것은 멀지 않은 곳에 그 역사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진고개에서 멀지 않은 봉평 초입에는 봉산서재가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을 예견했던 두 학자인 율곡 이이와 화서 이항로를 기리는 자리다. 또 율곡 이이가 잉태된 자리이기도 하다. 율곡 이이의 부친인 이원수가 인천에서 수운판관으로 머무르던 조선 중종(中宗;1530년경) 때, 사임당 신씨는 강릉과 서울 사이를 오가는 남편의 고단함을 걱정해 이 봉평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갸륵해서일까, 사임당은 봉평의 판관대(수운판관을 지낸 이원수의 직책에서 이름을 따 ‘이판관의 집터’라는 뜻)에서 율곡 이이를 잉태(1536년 봄)했다.

유생들의 상소를 받아들여 고종이 이곳에 봉산서재를 세운 때는 일제강점기(1906년)였다. 봉산서재를 지어 조국의 기운을 중흥하려 했던 고종의 절박함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오히려 안온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아마도, 여기서 잉태된 것이 천년을 이어갈 혼이어서 그런 것인가. 이곳에서 내 근본을 바로 잡고 몸을 세운다. 발을 디딘 부분이 단단하다면, 밖으로 넓혀가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봄은 내 앞을 다져가기 알맞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건립에 참여한 유생들과 건립 취지를 기록한 현판

봉산서재의 모습

겨울을 이겨내고 황금이 된, 황태

집밥처럼 따뜻한 밥상, 황태찜 한 상 영동지방에서는 ‘오대산에 가서 밥을 먹지 못하면 사흘을 앓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곳의 산채 밥상도 메밀도 명성이 자자하지만, 봄과 가장 어울리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황태다. 우물에서 숭늉 찾고 산에서 생선 찾는 것 같지만, 맛있는 황태는 이미 산 넘고 물을 건너 여기서 봄맞이 중이다.

봉산서재에서 6번 도로를 타고 이효석 생가 쪽을 향하다보면 식당촌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황태 메뉴는 메밀의 아성을 위협할 만큼 다양하고 그 맛도 깊다. 백색에 가까운 은빛 명태가 황금빛 황태가 되기까지 말랐다 녹았다하던 그 인고의 시간이 깊은 맛으로 배어들었을까. 귀한 음식을 앞에 두고 사설이 길다. 예쁜 그릇에 담긴 식당 음식인데, 곁들여 나온 찬이며 음식의 온기며 정성으로 따지면 집밥과 다름없다. 산나물에 장아찌, 어느 것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이런 음식만 먹으면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살 것 같다.

튤립

비밀의 숲 같은 봄의 정원, 허브나라

흥정계곡이 있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부부가 두 손으로 가꾼 비밀의 정원이 숨겨져 있다. 들어서자마자 보랏빛 아네모네의 큰 꽃송이부터 눈에 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꽃인지 모를 만큼 꽃에 꽃이다. 겨울이 길고 응달이 진 산기슭에서 그토록 큰 꽃망울이 피어날 수 있다는 건 가꾸는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일 터. 짙은 봄 향기는 모두 여기에서 피어나는 듯하다.

꽃도 꽃이지만, 어쩌면 이곳의 진짜 주인은 바람일지도 모른다. 바람개비와 풍경이 발 닿은 자리마다 가득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강원도로 들어설 무렵부터 내내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왔던 것이 봄바람이었음을, 여행 막바지인 여기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찾으러 간 게 아니라 내내 함께 걷고 있었다는 것도.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걸어갈 것이라는 것도.

그대와 함께 봄 길을 걸어서, 좋았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유리 온실의 꽃길 정원

봄꽃이 가득한 연못

<글: 김혜진 / 사진: 김규성>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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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7-05-15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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