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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돕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어요!

지역 복지센터 동료상담사 홍민정

“제가 탈북민이기 때문에 그 분들 속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잖아요. 먼저 정착한 선배로서 동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상담사가 되고 싶어요.”

민정 씨는 올해 3년차 ‘동료상담사’가 됐다. 동료상담사는 6년 전 민정 씨가 처음 왔을 때처럼 모든 게 낯설고 막막한 탈북민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 낯선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외로움, 일자리를 새로 찾아야 하는 부담감 등 탈북민들이 느끼는 어려움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일이다.

홍민정 씨

손목 부상으로 시작한 엑셀·전산회계 공부

아직도 딸아이와 두만강을 건넜던 그 밤을 잊지 못한다. 두 번의 북송 끝에 딸은 두고 가라는 친정 엄마의 만류에도 손을 꼭 붙들고 왔던 딸이 두만강에 빠진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다급한 마음에 물속을 뒤지고 또 뒤지다가 덥석 잡은 딸아이의 옷깃. 물 밖으로 나와 무사한 딸을 부여잡고 엉엉 목 놓아 울었던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딸아이만은 꼭 지키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홍민정 씨 일곱 살 때 북한에서 데리고 온 아이는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왔고,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울타리가 돼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엄마에게 할 정도로 배려심 많고 리더십 강한 숙녀가 됐다. 딸아이의 성장을 보는 것도 흐뭇한 일이지만 요즘 민정 씨는 일하는 게 ‘진짜진짜’ 즐겁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복지 일이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인 것 같아서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마냥 민정 씨의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 피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이고 활발한 민정 씨라고 남한 적응이 처음부터 쉬웠을 리 없다. 북송됐던 기억이 끔찍해 한국조차도 오고 싶지 않다는 딸아이를 중국에 두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당에 취직한 뒤 배달, 서빙, 주방일을 도맡아했다. 매일같이 뼈 국물을 한 트럭씩 끓이고, 무거운 뚝배기를 닦고, 쟁반을 이고 나르는 일을 2년 동안이나 했다. 그러다 무리한 탓에 손목 인대가 늘어나버렸고 하는 수 없이 식당을 쉬어야 했다.

일을 쉬면서 중국에 있는 딸에게 생계비를 못 보내게 되자 눈앞이 캄캄해진 민정 씨. 그때 뜻밖의 길이 열렸다. 도청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탈북 선배 연하 씨에게 국비로 지원되는 무료교육을 추천받았던 것이다. ‘돈을 벌어야지, 이 나이에 공부해서 뭐하나’ 싶었지만 어차피 일은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한 번 해보자 싶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엑셀, 오후에는 전산회계 수업을 들었고, 3개월 뒤 ITQ엑셀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북한에서 했던 통계원 경험이 빛을 발한 모양이었다.

마흔 살, 쇼핑몰 인턴 경리가 되다

자격증을 따고 나니 고용센터에서 일자리를 연결해주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신입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센터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쇼핑몰 경리부 인턴사원이 됐다. 하지만 입사 초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학원 수업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어려운 기능들이 많았던 것이다. 민정 씨는 회사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고, 그런 마음을 좋게 여긴 사장은 민정 씨에게 직접 일을 가르쳐주었다.

열심히 배우다보니 어느새 민정 씨는 전산회계사 자격증까지 있는 2년차 경리가 돼 있었다. 하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월급이 밀렸고, 두 달에 50만 원을 받으며 근근이 버텨온 민정 씨는 이직을 준비해야 했다. 민정 씨는 쇼핑몰을 나와 곧바로 건설사에 들어갔지만, 건설사 역시 얼마 안가 폐업하고 말았다. 그사이 딸도 중국에서 데리고 왔고, 이제 안정적인 직장도 찾았구나 싶었던 민정 씨는 연거푸 찾아온 실업에 다시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홍민정 씨

이때 선배였던 연하 씨가 또 한 번 큰 역할을 해주었다. 탈북민 출신의 복지 상담사를 찾던 채용공고를 내밀면서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하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민정 씨. 사회복지는 지금껏 배워온 경리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기 때문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연하 씨는 “복지관 일도 경리처럼 배우면 된다”며 격려해줬고, 앞으로 어떤 공부들이 필요한지도 꼼꼼히 알려줬다.

탈북민들의 친구, 선배, 가족이 되는 일

매일 아침 복지관을 청소해놓고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미소 가득한 얼굴로 인사하는 민정 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자신처럼 어렵게 탈북한 동료들과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큰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복지관을 찾아오는 탈북민들은 갖가지 문제로 민정 씨를 찾는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탈북민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민정 씨가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부터 관련 기관과의 연결이 전부인 어려운 문제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한 번은 생산직 일을 하던 탈북민 분이 심하게 다쳐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가진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찾아왔더라고요. 가족이 없으니 수술동의서를 써줄 사람도 없었고요. 그래서 제가 수술동의서를 써드리고 밤새 수술실 앞을 지켰어요. 수술비가 250만 원이 나왔는데, 돈이 없으니까 바로 퇴원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방법을 알아보다 보니까 주민센터에 긴급생계비를 요청해보라고 해서 해결이 됐어요. 저도 같은 탈북민으로서 그 분이 느끼는 막막함이 뭔지 잘 아니까 발로 뛰면서 방법을 알아보고 도와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민정 씨는 지난 6년 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어떤 일을 하던 작은 목표들을 정하고 그것을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나가는 방법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 보다 천천히 작은 목표들을 이뤄나가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민정 씨는 요즘 가족상담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하 선배에게 도움을 받은 것처럼, 민정 씨도 동료 탈북민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다.

‘새내기 엄마 양육교육 발대식

홍민정 씨가 일하고 있는 건강가정팀

<취재: 기자희, 강문희>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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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7-05-15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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