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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스토리 | 통일을 여는 사람들

탈북청소년 영어멘토가 되어 내일의 통일을 준비합니다 이병화 전 노르웨이 대사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정착해 생활하며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외래어다. 티켓, 나이프, 냅킨 등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외래어조차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종종 곤란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영어교육을 받아 온 또래 친구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탈북청소년들에게 영어는 가장 어려운 과목으로 손꼽힌다. 심지어 어렵게 대학에 입학 한 후에도 10명 중 3명 정도가 영어 과목으로 인해 학업을 중도 포기할 정도다. 이병화 전 노르웨이 대사는 이러한 탈북청소년들의 영어 멘토링을 통해 학업은 물론 남한사회로의 적응을 돕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이 진짜 ‘통일의 가교’가 될 수 있도록

출신 성분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탈북청소년들은 영어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까지 하고도 결국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이 똑같은 교실에서 수업 받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부족한 ‘영어’ 실력은 단순히 교과목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중학교 2학년 생인 영현이(가명)이는 알파벳만 겨우 읽을 줄 알아요. 그런데 영어 문장을 줄줄 읽어 해석하고, 영작도 해내는 반 친구들과 같은 수업을 듣습니다. 못 배웠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데도 그게 부끄러워 수업 내내 눈치껏 입을 뻐끔거리고, 교과서만 멀거니 바라본다는데 그게 얼마나 괴롭겠어요.”

이병화 전 노르웨이 대사그렇게 한 번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은 영어 수업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 국어 등 다른 교과목 수업이나 학교생활 자체에 흥미를 잃고 종래에는 적응을 못 한 채 학교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전 대사는 ‘먼저 온 통일’인 탈북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통일 일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 향상을 통해 자신감부터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공직생활 중 대부분을 모스크바, 카자흐스탄 등 구소련 지역에서 근무하며 평소에도 북한이탈주민과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 전 대사였기에 퇴직 후 자연스럽게 탈북청소년들의 영어 멘토를 자청할 수 있었다.

탈북청소년의 영어 멘토가 된 전 노르웨이 대사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재능봉사를 자청한다고 해도 아직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개인정보 노출에 불안감을 가진 탈북청소년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에 이병화 전 대사는 2015년 노르웨이 대사로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 온 후 본격적으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나 방과 후 교실 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의 연계를 부탁했다.

한창 사춘기, 예민할 시절의 아이들이기에 대사 시절 북한이탈주민을 자주 만났던 이 전 대사라 해도 탈북청소년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부터 이수한 후에야 비로소 아이들과 영어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10시간, 집에서 출발하면 꼬박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가끔 야속하게 눈비가 내리는 날이면 몸이 고된 것도 사실이지만, 작은 재능의 실천이라도 통일에 작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란 책임감으로 수업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교재를 챙겨 들고 문을 나선다는 이병화 전 대사.

일러스트 이미지“수업은 지난해 초부터 시작했지만, 공부방이나 아이들 사정으로 인해 수업이 꾸준히 진행되기 어려울 때가 많아 아직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수업 내용 외에는 먼저 묻지 않거든요. 사실 북한 출신이란 것만 빼면 남한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어요. 개중에는 열심히 해서 몇십 점씩 성적이 오른 녀석도 있고, 어렵다고 계속 딴짓만 하는 아이도 있고요. 그래도 순하고 참 예뻐요.”

가끔은 수업 외에도 이성이나 진로 등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에게는 인생의 선배로서 좋은 조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아이들과 시나브로 정을 쌓아가는 동안 이 전 대사의 마음속 통일에 대한 열망 역시 더 단단해졌다.

탈북민이 행복한 나라가 통일한국의 희망 씨앗이다

요즘처럼 북한이탈주민이 많지 않던 90년대. 러시아 모스크바 대사관에 근무하며 북한사람을 처음 만났던 이 전 대사는 북한사람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남북한 사람들이 가진 막연히 서로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과 불신으로 인해 오히려 마음의 장벽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신뢰와 통일에 대한 의지가 함께할 때 비로소 통일을 이룰 수 있다며 독일통일을 예로 든다.

“독일이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인지 아세요? 정치적 상황이나 외교적인 분위기 등 뭐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일 순위는 동독주민들의 열망이었대요. 통일을 원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에 통일이 가능했던 거죠.”

이병화 전 노르웨이 대사

그래서 북한 주민 상당수가 남한이 아닌 중국과의 통일을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봤을 때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전 대사가 탈북청소년을 가르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어학공부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남한사회에 잘 적응해, 남북한의 상황을 모두 경험한 탈북청소년들이 언젠가 통일의 가교로서 제 역할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아이들과 수업이 없는 날이면 북한 인권개선 캠페인 등에 빼놓지 않고 참여하는 이유 역시 같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가 먼 남북한.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 전 대사는 정부나 관련 단체는 물론 국민 개개인이 지금 바로 우리 생활 속에 성큼 다가온 ‘먼저 온 통일’ 즉 북한이탈주민들을 선입견이 아닌 이해와 관심으로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 통일을 향한 작은 희망의 씨앗 역시 함께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고구려의 기상을 품고, 만주벌판을 달리는 그 날까지!

물론 그렇다고 통일만 되면 모든 문제들이 한 번에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취업과 결혼 문제로 힘겨워하는 젊은 세대들의 마음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통일은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숙원사업이란 게 이 전 대사의 생각이다.

강익중 그리운 내 고향“요즘 청년들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잘 압니다. 하지만, 통일 후 일정 기간 함께 지고 가야 할 짐 때문에 세계로 뻗어 나갈 기회를 포기해야 할까요? 통일이 되면 중국, 러시아 아니 전 세계로 옛 고구려의 기상을 살려, 더 힘차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은 이제 그만 전쟁의 불안함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이병화 전 대사는 스스로를 ‘통일의 작은 물방울’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과 실천을 통해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또 다른 물방울을 불러 모으고 있는 중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얼마 전 서울역에서 진행된 북한 인권개선 캠페인에 자신을 따라 엉겁결에 참여한 한 지인이 처음으로 북한 문제와 통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내년에는 개인 일정을 좀 더 쪼개 더 많은 탈북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더없이 기쁘다. 그렇게 이병화 전 대사는 오늘도 신뢰가 ‘빵빵한’ 내일의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글.사진 / 권혜리>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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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전체 기사 보기 기사발행 : 2017-01-0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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