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만나다 | T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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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 것은 군인만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도 순국열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이념이나 어떤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것도 아니다. 그저 난리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갔던 무고한 민중들. 그들의 죽음이야 말로 전쟁의 가장 큰 상처라 할 수 있다. 여수시내에서 만성리해수욕장으로 향하다 보면 지나게 되는 마래 제2 터널 혹은 만성리굴이라 불리는 곳 역시 전쟁 당시 죽어간 민중들의 넋이 남아있는 현장이다. 국내 유일의 암반터널인 이곳은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민족이 강제노역으로 파낸 곳이다. 길이 640m, 높이 4.3미터.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따로 손댈 곳이 없을 만큼 돌이 단단한 이곳을 쇠망치와 곡갱이로 일일이 파내야 했기 때문에 공사 중 다치거나 죽는 사고는 일상이었다.

터널 안에는 100m마다 교행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폭이라 터널 앞에서는 모든 차가 속도를 늦추게 된다. 마치 죽어간 이들의 안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차들은 느리고 조용히 지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1948년 여수·순천사건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가 짙은 여수 바다를 마주보고 있어,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에 대해 되새기게 한다.
간간히 비구름이 무거워진 몸을 못 이겨 물방울을 떨구긴 하지만 오히려 뜨거운 햇살이 잠시 자리를 비켜 준 덕분에 찬찬히 바다를 구경하기에는 더 좋은 요즘이다. 특히나 마래터널을 통과해 바다를 끼고 달리다 보면 기찻길 너머로 만나게 되는 만성리 검은모래해변은 그 독특한 질감과 색깔 덕분에 짙은 구름 아래 더 신비롭다. 시원스레 펼쳐지는 바다로 작은 어선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입자가 굵어 발바닥을 간질이는 검은모래의 감촉이 재밌는 이곳은 ‘모래찜질’이 유명한 명소다. 신경통과 각종 부인병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예전부터 음력 4월에는 ‘검은 모래 눈 뜨는 날’이라는 민간풍습까지 있을 정도다.

여수바다를 더 가깝게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만성리 검은모래해변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여수해양레일바이크를 추천한다. 국내 최초로 4.1km 전구간이 해변을 따라 운행되는 말 그대로 해양레일바이크로 1시간 여 동안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다 보면 답답했던 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지난해 여수해양박람회를 개최했던 행사장을 재개장해 문을 연 여수엑스포공원 역시 지척이다. 올해 10월 20일까지 연중무휴로 개장한 엑스포공원에서는 해상분수쇼 ‘빅 오’를 비롯해 스카이타워, 엑스포디지털갤러리, 아쿠아리움 등 박람회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시설물들을 체험할 수 있다.

여자만의 해넘이와 ‘해를 마주 본다’는 뜻을 지닌 향일암의 일출로 이름난 여수이지만, 최근에는 가수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 때문에 밤바다까지 각광받으면서 일부러 여수의 밤을 보기위해 발걸음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여수의 야경을 보기 위한 장소를 꼽자면 돌산공원을 놓칠 수 없다. 밤이면 50여 가지 색상으로 변하는 화려한 조명과 밤바다의 조화로 유명한 돌산대교를 비롯해 아름답기로 소문난 여수의 항구 그리고 가족낚시터로 유명한 장군도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야경 포인트다. 뷰포인트로 유명한 곳답게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 좋으며, 돌산공원 아래로는 거북선 모형 유람선 선착장이 위치해 있다.
돌산공원이 야경으로 유명하다면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인 금오산 향일암은 빼어난 일출의 풍광으로 입소문 난 곳. 돌산대교를 넘어 그 유명한 여수 갓김치의 고향, 돌산으로 향하다 보면 닿을 수 있는데 그 전에 먼저 둘러볼 곳이 있다. 바로 북한반잠수정 전시관이다. 1998년 12월 17일 여수시 돌산읍 임포지역 앞바다로 침투하다 우리 군과 교전 끝에 침몰된 북한 잠수정을 인양해 공개 전시한 시설로, 승용차를 타고 돌산대교에서 향일암 방향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시설은 작지만 북한 잠수정은 물론 당시 함께 노획된 장비들도 볼 수 있으며, 관람비는 무료다.

거북이 형상의 금오산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향일암은 백제의 의자왕 4년에 신라의 원료대사가 원통암이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조선 숙종 41년 향일암이란 이름으로 개칭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마을에서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 편으로 중간 매표소를 지날 때 계단길과 평길 중 선택해 오르면 된다. 단 양쪽모두 길이 평탄치 않고 여름철에는 바닥이 미끄럽기 때문에 샌들이나 굽이 높은 구두는 위험 하다. 다행히 계단 중간에는 쉬어갈 수 있는 의자 등도 마련돼 있으니 여유있게 오르는 것이 좋다.

암자에 다다르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석굴이 나온다. 향일암에는 이 석굴을 포함해 7개의 바위동굴 혹은 바위틈이 있는데 그 곳을 모두 통과하면 소원 한 가지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으니 소원하는 바가 있으면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석굴을 통과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수식어가 필요치 않는 남해바다다. 대웅전이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뿌옇게 연무 낀 바다의 풍광은 감탄사마저도 삼키게 된다.

여수는 예로부터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온화한 기후와 오염되지 않는 토양 그리고 청정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 덕분에 특색 있는 먹거리로 유명한 지역이다.


갓김치와 함께 여수의 대표적인 ‘10味’ 중 하나인 간장게장을 맛보고 싶다면 돌산대교 인근의 숙박업소 밀집지역인 봉산동으로 향해보자. 여수 간장게장 맛 집으로 소문난 곳이 여럿 모여 게장골목을 형성하고 있는데 특히 유명한 곳은 두꺼비식당이다. 게장 정식을 시키면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조기매운탕이 맛깔스런 밑반찬과 함께 나란히 차려진다.


청정의 자연이 키워낸 밑반찬도 맛있지만 대표메뉴인 간장 게장은 담백하고 감칠맛이 좋아, 살을 살살 파내 뜨거운 밥 과 비벼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줄어드는 게장 그릇에 마음상할 것 없다. 공기밥은 추가 요금을 받지만 게장은 무한리필된다. 단 2인분 이상만 주문 받는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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