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다 | 세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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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끼 영양가 있는 식사,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피부가 좋아져서 동안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듣습니다(웃음). 신병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주고 계급이 제일 낮은데도 간부님들과 운동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낄 정도로 군 생활이 재미있습니다. ‘나이가 어렸다면 전문하사에 지원했을 것’이라고 전우들에게 이야기할 정도 입니다.


4월 26일 28연대에 분대장으로 남게 돼 현재 열심히, 즐겁게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교육이 끝나면 7월부터는 훈련병들을 직접 가르치고 군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인도하게 됩니다. 그런 일을 군대에서 할 수 있다는 일 자체가 보람차고 뿌듯합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은 없는지 많이 물으시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한국말과 음식, 예절 등 한국 문화를 많이 가르쳐주셔서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가장 뜻 깊게 생각하는 건 나라를 위해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이 있겠지만 군대에서 정말 큰 인생의 지혜를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포 2세대나 1세대가 아닌 1.5세대이다 보니 한때 정체성에 혼란이 와서 힘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의 청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남들에게 떳떳해지려면 당연히 병역의무를 마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한 단체의 초청으로 작년 9월에 한국에 오게 됐는데, 2~3주간 머물면서 군 입대 결심을 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태극기를 좋아하는데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극기를 달고 다니면서 한국인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제대하게 되면 제일 먼저 가방을 사서 가방 한가운데 태극기를 붙이고 다니고 싶습니다(웃고 있지만 진심인 듯~).


첫째 대한민국 남자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는 점, 둘째 군대라는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해본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역문제로 인해 더 이상 출·입국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좋습니다. 남들 다 하는 군 입대가 자랑은 아니겠지만 두 아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란 걸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이민으로 고등학교 과목을 힘들게 이수하고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하여 음악원(전문대 형태의 음악 전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기 때문에 당시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던 공장과 가게를 도와 일을 하기 위해 그만두었습니다.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아마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동생도 졸업했고 아버지도 건강을 되찾으셨으니 저의 꿈만을 향해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동생은 부모님 다음으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고 오래 떨어져있다 보니까 더 우애가 깊어진 것 같습니다. 이민자 가족들이 대개 그렇듯 가족 간의 정이 남다릅니다.


사실 아르헨티나 한인사회에서 아버지와 형, 저는 사회활동이나 봉사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유명인사로 통합니다(웃음). 아버지는 한인회 일을 도맡아 하시면서 ‘수장’역할 보다는 총무나 부회장 등 주변에서 실무를 하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누구보다 열의 있게 활동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형은 어릴 때 제가 외국인에게 맞거나 왕따를 당하면 학교로 찾아와서 애들을 혼내주곤 했습니다. 또 학업 대신 일을 하면서 그 월급으로 제 학비를 보탰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형식이는 어릴 때 장난감을 친구들에게 줘버리고 자기는 뒷전에 앉아 있을 정도로 남을 잘 배려하는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반 아이가 수학여행경비가 없어 못 간다고 해서 제가 몰래 그 경비를 지원해 주었는데, 그 친구가 여행을 같이 가게 되었다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기가 막 시작될 무렵 이민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을 텐데 절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며 모든 희생을 감수하던 착한 애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포 보컬 팀에서 드럼을 맡아 공연을 했으며, 사물놀이는 경지에 이르러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한국문화를 홍보하고 현지 음악전문 학교에서 강의를 할 정도였습니다.

태현이는 불의를 용서 하지 않는 정의로운 성격입니다. 또 이민 직후 청강생으로 1년간 학교를 다녔는데 완벽한 학습능력을 보여주어 학부모와 교장 회의를 통해 정규학생으로 편입되었고, 이후에도 단 한 번의 낙제 없이 학업을 마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납니다. 또한 갓 이민 온 사람들에게 솔선수범으로 통역과 편의를 제공해 현지 교민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말과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예능부분에 재주가 좋아 한인사회 이민 40주년 행사를 비롯한 많은 행사에 진행을 맡았고 명문 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 (UVA)에서 국제무역학을 전공하다가, 꼭 연기를 해보고 싶다며 단국대학교 에 입학, 영화연극을 전공하였습니다. 마지막 학기에는 전액장학금을 받아 가족에게 기쁨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추울 때 덮을 수 있는 따뜻한 포단 같습니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겠습니다. 통일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자연스럽게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사실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는 북한보다 독도를 넘보는 일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찾아가서 시위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한국은 ‘제 자신’입니다. 아무리 외국에 살면서 외국어로 이야기해도 제 생각과 제 피는 한국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사실 외국에서 자라면서 그 나라의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통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1950년도에 전쟁이 터져서 남과 북이 갈라져 있다는 정도? 그런데 군대에 와보니 왜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들이 군대에 와야 하는지 많이 배웠습니다. 최근 일촉즉발의 위기로 한국이 주목받으니까,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제 안부를 자꾸 물어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한국은 당연히 나와는 떼어서 생각 할 수 없는 ‘우리나라’이고 통일은 ‘내 민족의 갈라진 아픔’을 씻어야 하는 큰 일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내 민족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우리가 한 때에는 ‘경제’, 그리고 ‘민주’ 때문에 ‘통일’이니 ‘민족’을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들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해야 할, 그리고 해 볼 만 한,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병역문제로 갈등하는 친구들을 보면 걱정하지 말고 바로 지원해서 가는 게 답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한국군대 진짜 좋습니다. 예전에는 일을 하다가 포기하고 싶으면 미뤄두는 경우가 있었는데, 군대 생활을 해보니까 일단 부딪쳐보는 용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실패나 실수도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물리적 분단이 무서운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벽’이 가장 큰 적이거든요. 북에서 태어난 사람은 체제를 잘못 만나서, 지도자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코리안’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같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영화학교를 졸업한 배현석 감독이 한인 1.5세대들의 정체성 혼란을 테마로 한 영화 ‘Do U Cry 4 Me Argentina?’를 연출했는데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제 꿈은 뮤지션입니다. 작사 작곡을 하면서 배현석 감독의 독립영화제작에도 음악감독과 배우로 함께 참여하고 싶습니다. 또 외국에 한국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지역적, 언어적 갭이 너무 큽니다. 저는 한국 음악을 알리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길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남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꿈입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명문대학에 진학했지만 그 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연기공부를 지금 안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허락해주셨고,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에 진학해 학업을 마쳤습니다. 제대 후 영화배우가 되어 스크린에서 만나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배우가 되면 대한민국의 가치를 외국에 알리는 일도 병행하고 싶습니다.


이민 사회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나쁜 길’을 가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온 아이들이라고 주위에서도 칭찬이 자자합니다. 둘 다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모국어처럼 완벽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진 끼와 재능을 잘 살리고 언어적 장점을 이용한다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갑자기 아들이 한국에 남는다고 해서 놀라셨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건강하게 잘 하고 있고 앞으로 저희 가족의 더 큰 행복을 위해 군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입대한 것이 자랑스럽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제일 사랑하고 많이 보고 싶습니다. 다치지 말고 아들 전역할 때까지 건강하십시요. 사랑합니다.


군대올 때 제일 많이 걱정한 것이 아빠의 건강이에요. 그동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해드린 게 너무 없는 것 같아서, 모두 관두고 아버지일 도우면서 아빠엄마 위해 살까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아빠가 지금까지 고생하셔서 저를 뒷바라지 해주셨으니까 제가 더 잘돼서 보답하는 게 아빠가 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항상 우리 둘만을 위해 살아오셨는데 이젠 부모님 바람대로 별장지어서 평온하게 사세요. 건강하게 제대해서 멋진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이제까지 공부도 사회활동도 그랬지만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항상 가족이라는 마지막 골키퍼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힘이 날 것 같다. 군 생활을 한만큼 출발은 늦을지 몰라도 목적지로 가는 과정은 오히려 수월할 수 있고, 도착은 더 빠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선임으로 있어도 어색하거나 불편한 기색 없이 친형처럼 잘 보듬어주는가 하면 전역을 앞두고 사회생활에 대해 고민하는 선임병들에게 사회경험자로서 해답을 들려주곤 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 오히려 군 생활을 어려워하는 전우들을 독려해 줍니다.
얼마 전에는 나이가 어리고 군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대대장님 지시로 형식군과 가깝게 지내도록 한 결과,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해줘서 심리회복의 계기가 되었 습니다.


제가 배식팀장이었을 때 방태현 교육생이 배식담당이었는데 카리스마가 있어서 그런지 여유있게 잘해서 배식이 빨리 끝나곤 했습니다. 교육할 때 시간이 늦으면 안 되는데 방태현 교육생이 리더십을 발휘하다보니 늦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청 긍정적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위화감이 없고 오히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더 다가가서 독려해주는 편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했다고 하니까 전우들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서 더 많이 친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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