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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여는 사람들 / 피할 수 없는 통일, 젊은 세대가 준비해야 ‘먼나라 이웃나라’ 저자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30여 년 전 발간돼 1,700여만 부가 판매된 학습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는 연도 외우기에 급급하던 세계사 공부를 단박에 흥미진진하게 바꿔놓았다. 책 이름 그대로 먼 유럽조차 이웃나라로 느껴지게 했던 ‘마법의 책’이었다. 장구한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쇄를 15권의 책에 담아 ‘고전’으로 만든 덕성여대 이원복 총장에게 독일의 통일, 그리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학생에게 비친 통일 전 독일의 풍경은

이원복 총장은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를 독일 유학 중인 1981년부터 어린이신문에 연재하기 시작, 무려 33년간 집필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정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었는데, 가장 많은 내용을 수정해야 했던 국가가 바로 독일이었다. 집필 당시만 해도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얼마 안 있어 통일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 급변의 시기,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던 이원복 총장이 기억하는 독일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이원복 총장은 독일이 분단되어 있던 1975년, 베를린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베를린에 가려면 동독 땅을 거치게 돼 있는데, 지정된 휴게소가 아니라 다른 곳에 머물 경우, 벌금도 많이 내야하고 자칫 잘못하면 간첩으로 오인받아 구금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동독 땅을 통과할 때 여권에 도장을 찍으면 공산국가에 들어갔다 왔다는 흔적이 남고, 남한에 귀국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비자도 다른 종이에 찍어줄 정도였죠.”

‘먼나라 이웃나라’ 저자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베를린에 가려고 프랑크푸르트를 향해서 차를 몰았던 이원복 총장 일행은 프랑크푸르트 오데르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두 곳이 있다는 걸 모른 채 동독지역인 오데르로 잘 못 들어섰다 동독 경찰에게 붙잡혔다.

“다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동독 경찰은 나치를 연상시키는 녹색군복과 가죽잠바, 색안경, 가죽장화를 착용하고 있어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어요. 왜 여기에 왔냐기에 길을 잘 못 왔다고 했더니 250마르크의 벌금을 내라는 겁니다. 우리는 가난한 학생이고 집에 갈 기름마저 부족할 정도라고 하소연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가라고 보내주더라고요. 단, ‘동독 경찰이 서독 경찰보다 훨씬 친절하다는 걸 잊지 말라’는 말과 함께요.(웃음)”

독일통일의 가장 큰 교훈, '민간교류부터 시작해야'

독일에서 10년의 유학생활을 거친 터라 누구보다 독일의 통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원복 총장은 독일과 한반도의 여건을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서로 너무 다르다는 것.
“내전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독일은 1,500년 이상 기독교라는 공통된 종교를 가진 국가였기 때문에 성직자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고, 이들이 동서독 통일에 가교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통일된 종교가 없고 북한 역시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성직자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잖아요.”

또한 주변국들의 입장 역시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 했다. 미·영·불·소는 독일이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통일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고, 폴란드의 경우 과거사에 대한 적극적인 사과를 통해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폴란드는 독일 때문에서 지도에서 세 번이나 사라진 국가지만 빌리 브란트 수상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자 더 반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세요. 4대 열강 중 한반도 통일을 진정으로 바라는 나라가 있나요? 게다가 북한 정권 역시 누구보다 통일을 원치 않기 때문에 결국 통일은 우리의 손으로 직접 이뤄야 합니다.”

숙명여대 강연에서 생활 속 북한 바로알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원복 총장 이원복 총장은 독일 통일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나라는 북한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TV 시청과 교류 등 동독의 실수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의외로 독일은 우리 통일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봤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했고 북한 내에 동독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독일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는데 있어 결국 주역은 우리가 되어야 하며 꾸준한 지원과 민간교류를 확대해 우리가 한 민족임을 확인시키는 방향으로 통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88올림픽이 동구권 몰락에 기름 부어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동구권의 공산정권이 무너진 게 바로 서울 88올림픽 때문이었다는 것. 물론 폴란드 자유노조에서부터 공산권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1985년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개혁과 개방)를 들고 나왔을 때 이미 ‘불만의 풍선’에 바람이 가득 찬 상태긴 했다. 이원복 총장은 그 풍선에 살짝 바늘을 댄 게 88올림픽이었다고 말했다.

“독일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해요. 올림픽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에는 거지만 사는 줄 알았는데 TV를 통해 서울 거리를 보니까 ‘우리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구마구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거예요. 실제로 88년 올림픽이 개최된 이후 6개월 무렵부터 동구권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먼나라 이웃나라’ 저자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이처럼 닫힌 세계에 정보가 스며들기 시작하면 변화가 생긴다. 현재 북한에도 컴퓨터나 휴대폰, USB 등을 통해 이미 많은 정보가 북으로 간 상태. 이 정보들을 통해 많은 북한주민들이 외부 세계의 소식을 알게 될 경우 통일은 더욱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주민과 탈북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체제가 다른 남한과 통일하는 것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막연한 공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 후 많은 동독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서독으로 갔다가 결국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당수가 돌아갔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더라도 우리끼리 사는 게 낫다’며 마음의 문을 닫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남한에 와 있는 탈북민들 역시 정서적 사회적으로 남한사회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을 경우 나중에 사회에 대한 반감 내지 불만으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원활한 남한 정착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통일이 젊은 세대에 가져다줄 무한한 미래

‘먼나라 이웃나라’ 저자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이원복 총장은 올 봄 취임 후 숙명여대에서 '생활 속 북한 바로알기', 덕성여대에서 ‘총장님께 듣는 통일 이야기’ 강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장은 젊은 세대의 통일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닥치면 모두가 낭패예요. 준비를 안하면 통일비용 등 제반 부담을 전부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는 거죠. 서독은 유럽에서 제일 부자나라였고 동독은 공산주의 국가 중 가장 잘 살았는데도 둘이 합치자 휘청거렸잖아요. 그런데 지금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예요. 준비가 안돼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통일 이후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통일은 우리가 바라지 않는다고 안되는 것이 아니기에 준비하는 자세, 준비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대학생들에게 들려줬어요.”

이 총장은 통일이 우리에게 축복일 수도 있고 어려움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축복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일단은 전쟁의 염려가 없는 궁극적인 평화가 온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며, 시장이 확대되고 북한의 질 좋은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 및 기술이 합쳐지면 큰 시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젊은 세대들이 ‘3포 혹은 5포 시대’에 눌려 좌절하는 걸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총장이 청년이었을 땐 모두가 가난했고 모든 게 부족했지만 당시에는 블루오션이 많아 어느 한 분야에서 열심히만 하면 최고가 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모든 게 레드오션이라는 것. 하지만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레드오션에도 반드시 틈새시장이 있어요. 무엇보다 통일이 되면 엄청난 가능성이 열리죠.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감입니다. 늦거나 빠르거나 시기의 차이일 뿐 자신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갖고 파고들다보면 뜻하는 바는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글. 기자희 / 사진. 나병필, 덕성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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