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누리다 | T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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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신록과 평화로운 산새의 지저귐, 뜨거운 태양마저 감사한 5월. 5월을 흔히 ‘가정의 달’ 혹은 ‘감사의 달’이라고 표현한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하자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이들이 우선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순국선열’이라 부른다. 봄과 여름의 교차점에서 만난 경기도 이천과 여주는 잊고 지냈던 역사와 순국선열들의 얼을 만나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부지런히 갈아타고 1시간 40여 분 남짓 달려 도착한 이천시 노성로의 이천국립호국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유공자 분들을 안장한 호국의 성지인 동시에 나라사랑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보훈처 소속의 국립묘지이다.

깃발이 펄럭이는 바람소리마저 잦아들 만큼 경건한 분위기가 감도는 호국원의 첫 인상은 엄숙, 그 자체다. 현충문의 현판 뒤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잠든 호국영령의 위훈을 추앙하기 세워졌다는 현충탑까지 시야에 담게 되면 절로 옷자락을 여미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렇게 현충탑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예를 올리고 나면 묘역으로 향하기 전 맞은편에 마련된 현충관으로 향하게 된다. 묘역으로 안장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는 곳인 현충관 1층에는 합동안장식 및 개별안장의식이 진행되는 350석 규모의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안장식행사가 없는 날에는 이곳에서 내방객 및 학생들을 위해 교육용 영화를 상영한다. 또 2층 안보전시관에는 6.25 전쟁부터 최근의 천안함 사태까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호국안보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자료들이 전시돼있다.

또한 무궁화와 태극기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장과 다양한 영상자료들도 눈길을 끈다.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문을 지나 느릿하게 묘역으로 오르다 보면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호국영령이 잠든 묘역을 찾은 아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경건한 분위기 탓에 제법 의젓한 모양새를 보이는 아이들이 연방 신기한 듯 눈망울을 굴리는 걸 보고 있자면 새삼 이 땅의 평화에 감사하게 된다.

특히 국내 8개 호국원 중 최근에 개원한 이곳은 영현안장을 봉안담이라는 벽체에 안장하는데 벽면 이미지를 치우천왕, 단군조선을 시작으로 6.25 당시 인천상륙작전 등 구역별 테마로 우리나라 역사를 형상화한 것이 이채롭다.

이천은 충절의 도시인 동시에 서울 근교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가족나들이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두 가지를 고르라면 단연 임금께 진상됐던 이천 쌀과 도자기 일 것이다. 이천은 천 년 전 고려를 방문한 중국사신이 ‘중국의 도자기를 능가하는 천하제일의 비색자기’라 극찬한 고려청자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곳으로,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가는 많은 도예가들이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굳이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도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곳곳에서 다양한 조형물과 도자기 관련 표지판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호국원에서 그리 멀지않은 않은 설봉공원 내, 이천 9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설봉호를 왼쪽으로 끼고 느릿하게 봄의 향연을 만끽하며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이천세라피아(구 이천세계도자센터)는 도자기를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도자아트 테마공원이다. 세라피아(Cerapia)는 세라믹(Ceramic)과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도자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제일 먼저 봄 소풍 나선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도자센터의 마스코트 토야(TOYA)가 방문객들을 반긴다. 그 위로 모양새가 독특한 곰방대 가마와 햇살아래 노곤하게 일광욕 중인 옹기들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이란 말이 서운하지 않게 색색의 자태를 뽐내는 꽃망울들과 곳곳의 이색적인 야외전시물에 시선을 빼앗기고 소리나무라 이름 붙여진 조형물의 청명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메인전시관 중 한 곳인 세라믹스 창조센터가 지척이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징징다리’, ‘설설다리’ 등의 예사롭지 않은 이름의 다리로 연결된 센터는 자기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사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토야지움은 도자기를 보관하는 수장고를 개조해서 만든 아이디어가 이색적인 공간으로 전 세계의 도자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차 예절을 배울 수 있는 ‘다례 시연장’, 직접 도자기를 구워 볼 수 있는 ‘토락교실’, 국내 유일의 도자전문도서관인 ‘도자만권당’ 등 발길을 멈추게 되는 곳이 지천이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마냥 낭랑하게 울리는 유리 풍경을 따라 걷다보면 세상사 뭐 그리 복잡하게 있나 싶다.

당연하지만 이천에 왔으면 이천쌀밥한정식이 정론이다.
‘임금의 수라를 위해 진상됐다’,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을 8년째 수상한 국가대표 쌀이다’ 등 이천쌀의 유명세를 들추지 않아도 떡하니 푸짐한 밥상을 받고 나면 가장 먼저 흰 쌀밥으로 시선이 간다.

탱탱하고 투명한 밥알은 푸르스름한 윤기를 좔좔 흘리며 값비싸고 다양한 반찬들 사이에서도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수한 밥 냄새에 이끌려 욕심껏 한 수저 가득 담아 입에 밀어 넣으면 첫 맛은 찰지고 끝 맛은 달다. 이래서 이천쌀밥에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 이천쌀밥이 ‘맛있다’란 형용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천쌀밥이 맛있는 것은 이천이 가진 천연의 자연조건의 공이 크다. 깨끗한 물과 쌀농사에 최적인 기후, 비옥한 토질이 만나 만들어낸 자연의 산물이다. 반찬 역시 정갈하다. 청정의 자연에서 그대로 건저 낸 풍성한 채소와 잡냄새 없이 잘 삶아낸 수육, 짜지 않은 간장게장 등. 정신없이 밥그릇을 비워도 뱃속은 든든하고 편안하다. 굳이 부산스럽게 맛집을 찾기 않아도 시에서 인증한 ‘쌀밥집’ 푯말만 찾아 들어가면 임금님의 수라상 부럽지 않은 한 상을 대접 받을 수 있다.
고려 말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목은 이색은 여주군(2013년 9월 시로 승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흐드러진 철쭉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여주의 젖줄, 여강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색의 표현이 과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천에서 고작해야 30여 분 남짓이면 닿는 여주는 빼어난 자연풍광의 영향으로 국보 및 천연기념물 등 75점의 문화재를 보유한 역사의 도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성군’으로 유명한 조선조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능과 제 17대 임금인 효종 그리고 그 유명한 명성황후의 생가가 자리한 곳으로 유명하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란 말 한마디로 대변되는 조선 제26대 고종황제의 황후로, 격변의 개화기에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다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한 명성황후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비일 것이다. 명성황후가 유명한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슬퍼런 일본의 칼날아래 목숨을 빼앗기기까지 그녀는 왕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물게 일제에 항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주 IC에서 인근에 자리한 명성황후 생가 유적지는 황후의 성격을 대변하듯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고 강직한 멋을 품고 있었다. 유적지는 명성황후가 8세까지 유년기를 보낸 생가를 중심으로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통해 왜곡된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마련된 명성황후 기념관 그리고 명성황후가 간택전에 머물렀으며 인현황후 역시 사저로 이용했던 감고당 등 다양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유명한 명성황후의 탄생 기념비 ‘명성황후 탄강구리’는 생가와 거북이 등으로 받치고 있는 형상인 그녀의 6대조 민유중의 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산세의 빼어난 모습에 감탄하게 되는 사찰은 많다. 하지만 강의 풍광에 넋을 잃게 되는 곳에 사찰은 신륵사가 유일할 것이다. 여주박물관, 여주도자세상 곁에 자리한 신륵사는 ‘여강’이라 불리는 남한강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강 옆 사찰로, 그 이름은 ‘신기한 미륵이 굴레로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해 ‘신륵’이라 명명됐다는 설이 있다.

특히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란 시조로 친숙한 고려 나옹선사가 입적해 유명세를 탔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릉의 원찰로 잘 알려진 곳이다. 경내에는 다층전탑을 비롯해 7점의 보물과 경기도 유형문화재가 보존 중이며, 그 유명한 황포돛대가 지나가는 길목으로 세월의 깊이를 짐작케 하는 소나무 아래 앉아 황포돛대 뱃머리에 부딪혀 은빛으로 부서지는 남한강을 보고 있자면 극락이 여긴가 싶다.
여주에는 두 개의 영릉이 있다. 하나는 세종대왕과 그 비인 소헌황후를 합장한 조선시대 최초의 합장릉인 영릉(英陵)이고 또 하나는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은 조선 제 17대 임금인 효정과 그 비인 인선황후의 영릉이다. 역사에 따르면 1446년 소헌황후가 먼저 승하하자 당시 광주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만들었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능의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여주로 그 자리를 옮기게 됐다.

먼저 영릉의 입구에 들어서면 한글창제와 해시계, 측우기 등 대왕의 업적을 대표하는 다양한 발명품들이 연두빛 잔디위로 자리하고 있다. 여주로 자리를 옮기며 그 규모가 축소됐다 하나 조선조의 군왕으로써 위엄을 잃지 않는 넓은 대지를 걸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붉은 홍살문을 지나면 능에 제향을 올리는 정자각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정자각 뒤로 둥근 봉분이 압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영릉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5분 여 걷다보면 닿는 효종의 영릉은 조선시대 재실(齋室)을 가장 잘 간직한 능으로 알려져 있다. 재실이란 제관의 휴식과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능 주변에 세워진 부속건물로 조선시대 재실은 재방, 안향청, 재기고, 전사청, 행랑채, 우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름날의 소나기가 보여주는 풍경으로 유명한 파사산성 입구 대신면 천서리 인근으로 향하면 막국수촌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 막국수의 첫 맛은 좀 밍밍하다. 간이 센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타 지역의 막국수에 비해 간이 심심하다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씹어 삼킬수록 메밀 특유의 감칠맛과 질감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수수하지만 쉽게 물리지 않는 맛에 오래도록 씹게 되고 그 덕에 동치미 국물과 메밀면발의 조화가 더 오묘해진다.

비빔국수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가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벌겋게 비벼지던 막국수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모양새부터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나 젓가락질이 더해질수록 칼칼한 매운맛에 뜨끈한 육수가 담겨있던 주전자가 금새 동이 난다. 사골과 어물, 양지, 다시마, 무 등으로 우려낸 육수는 일체의 화학조미료를 더 하지 않아 깊고 느끼한 여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3.1절을 삼점일로 읽고 6.25전쟁을 미국, 일본 등과 싸운날이라고 대답하는 아이들. 그리고 현충일을 공휴일로만 기억하는 어른들. ‘현충일’의 한자를 풀이하면 ‘나라를 위(爲)하여 목숨 바친 장병(將兵)과 순국(殉國) 선열(先烈) 등(等)의 충성(忠誠)을 기리는 날’이란 뜻이다. 또 영어로 바꿔 말하면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라고 한다. 기억하는 날, 기억해야 하는 날이란 의미다. 5월과 맞닿아 있는 6월을 ‘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가정의 달’과 ‘보훈의 달’이 닿아 있는 것은 아마도 살아있어 누릴 수 있는 가정의 행복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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