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다 | 남남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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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2007년도에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통일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북한과 통일에 관한 일들을 계속하게 된다면 북에서 온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2008년 2월에 운명의 사람을 만났어요. 탈북민 정착도우미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을 인솔해서 ‘통일비전캠프’에 참여했을 때 강사로 참가한 박예영씨를 처음 봤고 강의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한눈에 반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프러포즈한 뒤 연예를 했어요.


솔직히 프러포즈도 제대로 안 받았어요. 일방적으로 저를 따라다녔거든요. 좋은 사람인건 아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웃음). 어쨌든 밀어붙이니까 결혼까지 하게 됐네요.

저는 남한 남자와 결혼한 것을 예언적 만남이라고 불러요. 15살 사춘기 때 북에서 여학생들끼리 서로의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에도 식량난이 심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당 간부나 군관(직업군인), 의사와 같이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진 남자에게 시집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나는 통일이 되면 남조선 남자한테 시집갈 거야’라고 말한 거예요. 애들이 모두 어이없어 하면서 ‘넌 할머니 될 때까지 계속 혼자 살아라’고 놀리더라고요. 그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남한에 오기 전 태국에서 잠시 머물 때 생각이 났어요. 내가 정말 남한 남자를 만날 수 있는 남한에 가는 구나하구요.


문화적 사회적 차이들을 별로 못 느낀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북에서는 사회주의나 주체사상, 선군정치 등으로 인해 굳어진 사고방식과 행동, 언어들이 있긴 하지만 20~30대에게는 그런 영향이 적은 것 같아요. 아내도 20대 초중반에 북에서 나와서 그런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4년간 함께 살아보니까 남북의 차이가 아니라 다른 부부들도 겪는 남녀 차이, 성격 차이인 것 같아요. 만약 북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결혼한다면 문화적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많은 시간을 남한에서 보낸 뒤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런 벽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결혼 초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매사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까? 아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저는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지만, 아내는 그런 선택의 폭이 적은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둘 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상담 과정을 거쳤는데 자신을 알아가고 가정환경과 성격유형 등을 점검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혼가정에서 자란 저와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온 아내가 함께 이해하면서 대화해 나가니까 힘들지 않았습니다.


결혼 초만 해도 딜레마에 많이 빠졌었어요. 결혼 잘못했나보다 후회하면서 주변분들에게 여쭤보니까 결혼 10년차나 20년차 다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 라고요. 다 살면서 알아가고 맞춰간다고요. 부부 뿐만 아니라 남과 북도 마찬 가지인 것 같아요. 북한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그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봤느냐에 따라서 갈등과 충돌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내가 자꾸 저에게 ‘어휴 이 뻐꾸기 같으니라고’ 그러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뭘 잘 모르는 사람을 ‘뻐꾸기’라고 한다는데 아내에게 자주 들어서인지 저도 가끔 쓰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탈북민 대안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데, 애들이 잘 이해를 못 하기에 저도 모르게 ‘어휴 이 뻐꾸기들’이라고 말했는데 지루해하기만 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빵 터지는 겁니다. 영문을 몰라 왜 웃느냐고 물었더니 남한 선생님 입에서 뻐꾸기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면서 좋아하더라고요. 갑자기 공감대가 확 넓어진 것 같았어요. 이렇게 서로에게 동화되어 가는 것, 이게 자연스런 통일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음식문화의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 남한 순대를 처음 먹었을 때 ‘어라? 당면만 들어있네?’하고 놀랐어요. 아바이순대도 북한 순대맛과는 달라요. 떡볶이도 몇 번 사먹어 봤지만 고추장 맛만 날 뿐 왜 맛있는지 모르겠고, 치킨 역시 북한에는 없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호사스럽게 닭을 어떻게 기름에 튀겨먹겠어요. 북에서는 백숙을 닭국이라고 부르는데 명절 때나 별러서 먹는 음식이지요. 피자는 중국에서 처음 먹었는데 마치 먹다 남은 음식을 전부 부어 만든 것 같은 이 음식이 왜 이렇게 비싼가 하고 오히려 화가 나더라고요.


저는 여러 가지 음식이 있는 뷔페식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고향이 바닷가여서 그런지 해산물만 주로 먹습니다. 경제 여건상 북한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상에 올리는 습관이 돼있지 않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 음식에 큰 기대를 안 하고 살았는데 2년 전 북에서 장모님이 오신 뒤부터는 손수 음식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행복합니다.


우리 엄마의 음식을 남편이 너무 좋아해요. 오리지널 북한식인데도 맛있다고 너무 잘 먹는 거예요. 사실, 배부르게 먹지 못해서 그렇지 고향 음식이 저는 좋은 것 같아요. 북에서는 집에 사과를 숨겨놓지 못해요. 어디에 두어도 향이 나서 금방 알기 때문에요. 북에서는 과일이나 채소 등이 향이 진하고 맛있어요. 탈북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주로 음식 때문인 것 같아요.


서로 음식 취향은 다르지만 일부러 서로 좋아하는 것을 먹으러 가준다거나 해서 배려를 해요. 또 영화를 함께 보거나 볼링을 즐기기도 하고, 집에서 드라마 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든지 함께 해보면서 공감대를 넓혀갑니다. 문화란 바뀌는 것 같아요. 옷을 새것으로 갈아입었을 때 처음엔 어색하다가도 적응되면 자연스러워지는 것처럼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연상연하 커플은 보지도 못했고, 손아래와 결혼한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어요. 사촌오빠가 결혼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살 위 누나와 결혼한 거예요. 저는 어떻게 누나와 결혼할 수 있냐며 끝까지 이해를 못하고 나왔어요. 한국에 와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가 하도 쫓아다녀서… 솔직히 나이도 좀 들어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까 생각이나 행동이 어리지 않는 거예요. 그래도 북에 계신 엄마한테는 걱정하실까봐 남편 나이를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어요. 나와서 아시게 됐는데 막상 이야기하니까 크게 놀라지는 않으시더라고요. 북한에서도 최근에 ‘리찬의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됐는데 리찬이라는 시인이 나이 많은 연상녀와 결혼했던 실화를 드라마로 만든 건가 봐요. 그 드라마 때문에 요즘엔 연상연하 커플을 ‘리찬식 사랑’이라고 부르면서 북한에서도 새로운 결혼 추세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애정 표현요? 여기는 좀 대놓고… 거기는 몰래몰래, 손잡는 것도 몰래몰래(웃음). 북한에서는 연인관계가 아니면 사랑 한다는 말을 잘 안하는데 남한 사람들은 확실히 친절하고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차이를 동질감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는 저희 부부입장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는 좀 특별합니다. 이미 2만5천명의 탈북민들이 들어와 있는데, 무조건 남한에 적응하라고 하기 보다는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통일을 위한 첫 걸음인 것 같습니다. 탈북민 중에는 20~30대가 60~70% 정도 된다고 해요. 이 세대들이 이념과 사상을 떠나 전쟁이나 아픔이 없는 미래를 함께 꿈꿔나갔으면 합니다.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물리적 분단이 무서운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벽’이 가장 큰 적이거든요. 북에서 태어난 사람은 체제를 잘못 만나서, 지도자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코리안’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같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남한의 청년들도 취업 때문에 힘든데 이들에게 통일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육로가 열리기 때문 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꿈꾸고 통일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사람들에게는 정이 있어요.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죽음의 문턱 에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어렵다 하면 자기 것을 떼어주려는 마음이 있어요. 사람 냄새, 정이 살아있는 북한사람들의 장점을 봐주고 남한이 성숙한 자세로 손을 내밀어주길 바랍니다.

<글. 기자희 / 사진. 나병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백석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공부 중이다. 또한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탈북민들과 함께하는 교회(행복이
넘치는 교회)를 개척해 담임교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NKB(New Korea Builders) 대표, 감리교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중이다. 종교모임이나 미션스쿨 등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KOSTA를 통해 미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등 해외에서 유학생 대상 강의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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