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나누다 | 통일과 나(공모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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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지윤
나는 지난여름 북경에 어학연수를 왔다. 내가 이곳에서 공부를 하는 학교는 외국어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외국인들을 매일같이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이곳 에서는 북한사람들도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외국인 들을 지칭할 때는 ‘친구’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지만 이들을 지칭할 때는 친구가 아닌 ‘사람’이라고 표현하게 되는 것, 이것이 남북분단의 씁쓸함을 그대로 전해 주는 것 같다.

처음 북경에 도착해서 기숙사를 배정받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내 책상 한쪽 벽면에는 ‘조선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그것은 한글이었기 때문에 내가 금방이라도 읽어 낼 수 있었고, ‘조선’이라는 이름도 이미 친숙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숙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꼼꼼히도 붙어있던 그 문구를 떼어내는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남한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책상에는 아직도 그 문구를 떼어낸 흔적이 남북분단의 상처처럼 남아있다.

학기가 시작이 되고 수업을 듣는데 북한사람들과 같은 반이 되었다. 아직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몰랐던 사람이라도 같은 나라 사람 이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 또한 낯선 외국 땅에서 자기나라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사람과는 달랐다. 억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의 모든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생김새도 여지없이 비슷하지만 함께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누군가 특별히 감시를 한다거나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그래야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단국이 아니었으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이, 하지만 우리 는 가운데에 선을 그어 놓고 각각 한쪽의 국적을 가진 사이이기 때문에 인사 한번 나누는 것조차 괜스레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되었다. 한 민족이지만 암암리에 늘 서로를 경계하는 슬픈 광경이 외국인들 에겐 어떻게 보여질까.


어릴 때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자주 부르면서 막연히 통일은 좋은 것이고, 언젠가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하는 것으로만 생각 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될수록 통일이 된다면 발생 될 여러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을 생각하자면 머리가 복잡해 지는 것인지 요즘 젊은 사람들 에게서는 통일을 기다린다는 말은 쉽게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결국에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되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60년의 시간동안 이 작은 땅을 또 반으로 나누어서 각자의 정부 를 들여놓고 여전히 대립해서 살아가는 이 슬픈 싸움은 과연 누구와 누구의 싸움일까. 이 싸움은 남한사람 모두와 북한사람 모두와의 싸움 인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다. 남한이건 북한 이건 우리는 서로 한 동포, 한 겨레라는 인식은 언제나 가지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사상이 심겨지고 그것이 모두의 사상이 되어 결국에는 왜 싸웠는지 명확한 이유조차 불분명 해 진채 긴 세월을 원수 아닌 원수가 되어 살아 가고 있다.

우리는 한 민족이지만 우리들 나라의 땅에서는 만날 수가 없다. 지금 북경에서 다른 어떤 외국인들보다도 낯설게 만나게 되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만 만날 수가 있다. 만났다고 한들 쉽게 이야기도 섞을 수 없다. 지난 세월 우리들에게 심겨진 그 어떠한 사상이, 또 그 어떠한 교육이 자연스레 우리들을 어색한 사이로 만들었다.

정신없이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막연한 동화이야기가 되어버린 통일. 그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위치에 살면서도 그 어느 나라보다 가장 먼 사이가 된 이 이야기를 제3의 나라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어릴 적 순수한 마음으로 남북의 통일을 염원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 하지만 60년 전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남한과 북한은 원래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리 머지않은 시간 안에 이 하나의 민족이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