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다│통일을 여는 사람들

'애들' 야구가 남북한 어른간 소통 만든다 남북한어린이야구단 '논현돌핀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이 있다. 자녀를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지나쳐 생기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부모의 마음을 좋은 뜻으로 이용(?)하는 일도 있다. 지역사회에 선뜻 얼굴 내밀기를 꺼려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남한주민들과 화합케 하는 것. 남북한어린이야구단 ‘논현돌핀스’는 아이들의 야구를 통해 부모들간 친목과 교류를 유도해서, 북한이탈주민 가정에 든든한 이웃사촌을 만들어주는 소통의 프로그램이다.

“야구는 팀 스포츠, 다 같이 잘해야 돼”

논현 돌핀스 토요일 오전, 잔디도 없는 황토 흙 운동장. 남북한어린이야구단 ‘논현돌핀스’ 아이들이 모여 캐치볼 연습을 한다. 두 명의 아이가 짝을 지어 야구공을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는데, 공은 번번이 글로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 떼구르르~ 도망가기 일쑤다. 매번 공만 주우러 다니는 것 같은데도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감독님은 주루 연습도 시키고 타격, 수비자세도 열심히 가르치지만 아직 ‘쌩초보’들 천지다. 그래도 2년 전부터 야구를 시작한 1기 형들은 좀 낫다. 땅볼이나 뜬공일지라도 ‘땅’ 소리를 내며 배트에 공을 맞출 때가 많다. 경기의 흐름을 제법 읽어내는가 싶더니 “빨리 뛰어, 서! 다시 3루로 가!”라는 코치님의 말에 주루를 하다 말고 서서 “왜요?”라고 되묻는 모습도 재밌다.

“야구는 개인스포츠가 아니라 팀 스포츠야.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잘 해야 돼. 혼자 잘해서 이기는 것보다는, 다 같이 잘해서 지는 게 나아. 우리는 다 같은 팀이야!”
감독님이 아무리 멋진 말을 해도 아이들은 금세 산만해진다. 스트레칭 할 때도, 피티체조를 할 때도 아이들은 자꾸 장난만 친다. 그래서 종종 기합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논현돌핀스’라고 쓰인 빨간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모습만큼은 꽤 멋지다. 무엇보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는 남북한 구분이 없다. 다 같이 운동장에 모여 있으면 어느 아이가 남한 아이인지, 어느 아이가 북한에서 온 아이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은 오로지 등에 붙은 번호와 이름으로만 구분된다.

아이들 훈련에는 남북한부모가 함께 한다. 운동장 주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남북한 엄마들은 서로를 ‘언니’ ‘동생’이라고 부른다. 북한요리인 두부밥을 만들어 오거나 남한식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곳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리 온, 통일 후 ‘흔한’ 남북한주민들의 일상 같았다.

형제보다 나은 ‘이웃사촌’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논현돌핀스는 인천 논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야구단이다. ‘새터민야구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수별로 남한 어린이 10명과 북한이탈주민 자녀 10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된 ‘남북한어린이야구단’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6월 1기가 창단된데 이어 지난해 2기가 창단됐고, 오는 5월 17일 3기 창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효남 과장은 복지관 개관 당시인 2012년부터 야구단 창립을 기획하고 운영해왔다.
“저희 지역에 북한이탈주민분들이 많이 거주하시는데, 생활터전을 북에 두고 오신 이분들이 힘들 때 의지하고 모르는 것은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이웃사촌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논현돌핀스

그렇다면 왜 어린이야구단일까? 이효남 과장은 지역사회에서 남한주민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은 북한이탈주민 성인들, 특히 남성들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삼았다고 한다.
“논현돌핀스는 부모님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부모에게 떼쓰는 건 남한아이들이나 북한아이들 모두 똑같거든요. 자녀가 좋아하고 자녀와 함께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분들도 아이들을 따라 나오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좋은 취지와 달리 어느 것 하나 순탄한 게 없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을 모집하는 일이 난제였다. 지역 하나센터의 협조를 받아 정원을 겨우 채운 뒤에도 부모들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첫 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자, 2기 때는 그나마 쉬웠지만 3년차에는 북한이탈주민의 숫자가 줄어서 기수 모집에 다시 한 번 애를 먹어야 했다.

논현 돌핀스 유니폼과 야구용품, 캠프 후원금, 야구경기관람권 등 야구단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외부 펀드를 활용했다. 1기 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구단주가 되어주었고 2기 때는 구세군 법인과 공동모금회가, 3기 때는 한국야쿠르트가 구단주로 나섰다. 이효남 과장은 “홍보를 통해 외부 펀드를 끌어오는 일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의 의미를 넘어 지역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원을 전전하며 야구연습을 해야 했던 아이들에게 운동장을 만들어 준 일은 두고두고 뿌듯하다. 학생과 부모님까지 모두 함께 하기에 공원은 항상 좁았고, 오래 사용할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오픈해주지 않았다. 고민 끝에 복지관사람들은 나대지를 운동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재단에서 마련한 비용과 자체 후원금, 남동구청의 지원,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돌과 쓰레기가 가득했던 공터는 운동장으로 변신했고, 야구훈련이 없는 평일에는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운동장으로 바꾸기 전 나대지 모습, 논현돌핀스를 위한 운동장으로 변신

“함께 운동하면서 남북이 하나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3년차를 맞는 지금 아이들과 부모의 변화가 흥미롭다. 처음부터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몇 없었다고 한다. 북한에는 야구가 없기 때문. 축구를 하자고 조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재미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엎드려 뻗쳐만 했어요. 공도 못 만졌어요.”라며 투덜대곤 했다. 하지만 매주 운동장에 나와 함께 어울리고 프로야구경기도 관람하면서 야구에 부쩍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심지어 야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도 생겼다. 말도 잘 못하고 안 나올 거라고 했던 아이가 밝아지고, 셔틀버스를 탈 때도 가장 먼저 나와 있곤 한다.
남한 아이들의 성장도 눈에 띈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정현이(가명)는 “운동을 같이 하니까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북한 애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효남 과장 이효남 과장이 생각하는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부모간의 소통이다. 북한이탈주민 부모들은 처음에 ‘일 하느라 힘들어서 주말에라도 좀 쉬고 싶은데 왜 나오라고 하느냐’며 불평하기도 했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혼자 빠져있던 내 아이에게 친구들이 생겼고, 아이 손에 이끌려 나간 곳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나누는 이웃사촌을 만났기 때문.
“처음에 남한부모님들에게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들의 이웃이 돼 달라고 했고,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이들을 배척하지 말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면 편안하게 도움을 청하시라고 당부 드렸어요.”

지난여름 100여 명의 가족이 강화도로 캠프를 다녀온 뒤에는 부쩍 친해졌다. 특히 그동안 다소 소극적이던 아버지들이 주축이 돼서 야구단 운영에 힘을 보태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연말에 실시한 설문결과, 남북한주민간에 서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남한부모님들은 반공교육에 익숙해 있다 보니 북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보니까 애들도 똑같고 사는 게 다 같더라고 말씀하세요. 북한이탈주민분들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감추곤 했는데 이제는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도 하시고요.”
논현돌핀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야구 가르쳐 주는 선순환 만들 것

현재 논현돌핀스는 1기부터 3기까지의 아이들이 함께 모여 야구를 한다. 중학교로 진학했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한 학생, 부모가 참여하지 못해 나오지 못하는 북한이탈주민 자녀 등을 제외하고 총 34명이 운동장을 누빈다. 본인이 원하는데도, 부모의 협조가 안 돼 어쩔 수 없이 종료한 경우에는 대신 사례관리로 선회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케어를 할 예정이다.

이효남 과장은 논현돌핀스가 절반 정도는 완성된 것 같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고 변화되는 가정도 봤기 때문. 장기적으로는 선배 논현돌핀스 아이들이 후배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주도록 하는 ‘선순환’, 또 하나의 관계중심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기 보다는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유지를 위해 중학교에 올라간 선배가 남한아이들이든, 북한아이들이든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자생력을 부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논현돌핀스 그동안 아이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거들기만 하던 부모님들에게도 새로운 오락거리가 생겼다. 토요일마다 1시간은 아이들과 함께하고 1시간은 부모들끼리 탁구경기를 하게 된 것.
“왜 우리는 여기 와서 음식만 만드느냐고 하시는 분도 있었고, 올해 새로 참여하신 3기 어머님들과 1~2기 부모님들이 서먹서먹해 보여 탁구경기를 제안했어요. 복지관 내 탁구장으로 올라오시라고 했더니 탁구하시면서 금방 친해졌어요.”

논현돌핀스 ‘남북한어린이야구단’ 외에도 남북한주민간 화합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구상중인 이효남 과장에게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제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이 이북입니다. 조부모님들은 통일되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통일이 꼭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보다 먼저 남한에 오신 북한이탈주민분들과 함께 융화될 수 있도록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효남 과장은 또한 운동이나 멘토링을 할 때나 남한아동, 북한아동 구분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북한아동이기 때문에 더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 특히 스포츠를 매개로 소통한다면 ‘팀워크’를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너는 논현돌핀스팀이야’라고 늘 말해요. 팀으로 어울려야 금방 익숙해지고 화합될 수 있기 때문에요. 더 잘해주려고 하면 단합은 깨질 수 있거든요.”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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