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다 | 통일을 여는 사람들

인쇄하기 확대 base 축소

북한이탈주민 복지의 사각지대 돌보는 대학생 드림봉사단

선생님! 장점 할 때 ‘점’이 무슨 뜻이에요?
영남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박현희 씨. 지난 3월부터 행복나눔센터 대학생드림봉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그녀는 1년 6개월 전 한국에 온 초등학교 2학년(10살) 선영이 (가명)를 멘토링하고 있다. 선영이는 부모가 북한이탈주민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지역아동센터 등 관련 기관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즉, 복지제도의 사각에 놓인 아동인 것이다. 연길 지역 출신으로 조부모 손에서 자란 선영이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무척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현희 씨는 ‘괜찮아, 괜찮아’ 하는데도 선영이는 ‘제가 머리가 나빠요, 공부를 못해요’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뭘 물어봐도 예, 아니오로만 대답했는데 두 달 정도 지나고 부터는 대화가 되더라고요. 학교생활이나 친구들 이야기도 해주고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도 잘 하고요.”
선영이의 두드러진 변화는 읽기 실력 향상이다. 한국어도 서툴고 그렇다고 중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 선영이는 책도 더듬더듬 작은 목소리로 겨우 읽고, 시험을 봐도 문항을 이해하지 못해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장점할 때 ‘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더라고요. 남한 사람도 그런 건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리고 아주 원초적인 것을 물어봐요. 마침표는 왜 찍어요? 이런 거요.”
그러나 지금은 이런 당혹스런 질문도 줄었고, 특히 여름방학 때 독서 지도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읽는 것도 많이 매끄러워졌다. 처음에는 받침도 잘 모르고 소리 나는 대로 글씨를 쓰곤 했지만, 이제는 맞춤법도 잘 틀리지 않고 쓰기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아직 서술형 문제는 공란으로 비워두기 일쑤라며 아쉬워했다.
남한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는 ‘가족’ 멘토
가끔 곤란한 경우도 있다. 언어 때문이다. 부모님 모두 북한이탈주민인 선영이네 가족은 연변사투리보다는 북한 말을 많이 쓰는데,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고 한다. 특히 흥분해서 말을 빨리하면 더욱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선영아, 선생님한테 커피 나리하게 끓여드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선영이에게 ‘나리하게가 뭐야?’ 했더니 ‘나리하게가 나리하게인데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선영이도 그게 한국말로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또 한 가지 현희 씨가 맡고 있는 일은 ‘가정 통지문 해독’과 ‘문서 작성 대행’이다.
“아직도 엄마가 학교 통지문이나 학교에서 온 문자를 보여주며 뜻을 물어보곤 해요. 그래도 요즘에는 학교 시스템을 많이 이해하는 것 같긴 해요.”

이보다 더 난감한 것은 현희 씨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도와줘야 할 때이다.
“혼인 신고서를 접수해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하시는데 저도 결혼을 안 해서 모르잖아요. 또 아파트 계약 연장이나 인터넷 설치도 아직 잘 모르는데, 결국 인터넷도 제가 전화를 걸어서 설치해드렸어요.”

홈쇼핑과 신용카드에 대해 이해시켜드리느라 애먹은 적도 있다. 지난 여름 더위가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선영이 엄마는 홈쇼핑 광고를 보며 한 달에 2만 원씩만 내면 된다며 에어컨을 사겠다고 했다.

현희 씨는 신용카드가 없으면 구매할 수 없다고 설득했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셨다고 한다. 최근에는 학교측의 지원으로 선영이네 집에 컴퓨터를 들여놨는데 현희 씨는 전원 켜는 방법, 인터넷 접속방법 등을 알려주며 EBS무료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영이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해준 대로 했는데 소리가 안 나와요.”
알고 보니 스피커가 꺼져 있었다. 선영이는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사람이 그리운 영훈이에게 문화체험 기회 넓혀줘
이원욱 씨는 대구 교대 초등교육과를 졸업하고 1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가 현재 달서구청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중이다. 10살인 3학년 영훈이(가명)와 함께 매주 토요일에 2시간 씩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가 모두 북한에서 왔지만 영훈이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역시 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는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주말에 가도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원욱 씨는 동생과 단 둘이 집에 남겨진 영훈이를 주말마다 찾아가 일주일동안의 학교 이야기도 들어주고 밀린 공부도 봐준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 항상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안가면 주말에도 동생이랑 집을 지키고 있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멘티의 형처럼 가깝게 지내는 원욱 씨는 단순한 학습봉사뿐 아니라 문화체험을 거의 해보지 못한 영훈이와 동생을 위해 야구장과 콘서트장 등을 찾기도 했다.
“행사 정보가 드림봉사단 카페 공지사항에 올라오거나 문자로 오는데, 되도록 애들을 데리고 참여하려고 했어요.”
원욱 씨는 영훈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안타까울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들을 봐왔기 때문.
“북한이탈주민 자녀라 처음에는 아이가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영훈이는 집안 경제 상황이 열악한 데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개구쟁이처럼 밝아서 다행이에요. 북한이탈주민의 자녀에 대한 편견이 없어진 것이지요. 저는 잘 몰랐는데 영훈이 말로는 성적도 많이 올랐다고 해요.”
영훈이의 부모도 친형처럼 지내는 원욱 씨에게 가끔 수업 전에 짧게나마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십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곤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에게 학습·인성 멘토링 지원하는 행복나눔센터
대학생드림봉사단을 운영하는 곳은 달서구청의 주민생활지원과 행복나눔센터다. 지역민들의 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행복나눔센터는 2007년 4월에 개소했으며 대학생드림봉사단도 같은 시기에 30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출범했다. 이 멘토링사업 실무 총괄을 담당하는 이는 안유경 사회복지사다.
“초기에는 제가 직접 멘토들을 관리했지만, 고유 업무를 하면서 170명을 모두 관리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6개월 이상 멘토링에 참가한 학생을 코디네이터로 선발해 이 코디들이 멘토를 관리하고 저는 코디를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 중입니다.”
북한이탈주민 자녀를 대상으로 멘토링을 확장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지난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개최한 간담회에 참여해 그분들의 정착 사례를 듣다 보니까 달서구에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에 대한 복지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선미 팀장님과 함께 이들을 지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안유경 사회복지사는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시작하기로 하고, 먼저 재단을 통해 현황을 파악한 뒤 상담과 심사를 거쳐 10명을 선정했다. 그 가운데 3명은 학교부적응과 거주지 이전 등으로 중도 탈락했고 현재 7명이 멘토링을 받고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문화 가정과 비슷했어요. 가장 필요한 것은 학습이었지만 아이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멘토가 학부모의 조력자도 되어줄 수 있도록 했어요. 멘토를 통해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구청에서 지원을 해주고요.”

멘토들은 부족한 과목의 학습지도는 물론 인성 함양에도 크게 신경 쓰고 있다. 개별 멘토링과 더불어 행복나눔센터에서는 캠프, 스포츠관람, 체험수업, 봉사활동 등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태어나서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은 캠프에 가서 너무 행복해 했어요. 언니 오빠들이랑 있어서 좋았다고도 말했고요.”
연탄배달 봉사활동 통해 성숙해지는 아이들
안유경 사회복지사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연탄배달 봉사활동이다. 아이들이 받은 만큼 스스로 지역사회에 무엇인가를 환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1년 동안 봉사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실시했고 그 중 하나가 연탄배달이다.
멘토-멘티가 어우러져서 총 9가구에 2,700장의 연탄을 날랐는데 우비를 입고해도 얼굴과 온 몸에 연탄가루가 묻었고 고사리 손은 금세 새까매졌다. 재잘거리던 아이들은 힘에 부치는지 점점 말을 잃어갔다.
“나중에 간식을 먹으면서 들어보니까 이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며 연탄을 구경해 본적도 없는 나는 정말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 밖에도 ‘연탄배달 아저씨가 왜 까만지 알겠다’, ‘좋은 직업 할래요(가질래요)’, ‘공부 열심히 해야 겠어요’라며 여러 가지 소감을 쏟아냈다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연탄을 받은 어른들이 ‘고맙다’고 말하며 칭찬해주는 말에 더 없이 기뻐했다고 한다.
여름 방학 때 모 기관의 청소년들과 함께 간 1박2일 캠프에서는 극기 훈련을 실시했는데, 북한이탈주민 자녀 4명도 참가했다. 아이들은 ‘솔직히 고생 많이 했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역시 집이 최고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가족과 더욱 돈독해짐을 느꼈다.
야구장에서의 경험도 새록새록 하다. 처음에는 경기관람보다 치킨 먹는 재미로 자리를 지키던 아이들이 경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몰입하기 시작했다. 접전 끝에 12회까지 경기가 치러지자 아이들은 다 함께 목청껏 응원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지역 연고팀이 이기자 ‘이겼다’를 외치며 서로가 얼싸 안았다.

관심 분야에 대한 집중 멘토링으로 자신감 심어줘
안유경 씨가 이처럼 확신을 갖고 멘토링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개인적인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영(가명)이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와 헴께 사는 북한이탈주민 가정이었지만 다문화도 아니고 북한이탈주민으로 보호도 못 받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남한 부적응으로 우울증을 앓다 병원에 입원했고 미영이는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안유경 사회복지사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학습지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말도 별로 안하고 서먹서먹해 했지만 멘토링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감을 갖게 됐다. 미술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미술교사와 연결시켜 주자 미술관 체험도 함께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정서적 측면도 나아졌다. 스트레스 때문에 쪘던 살도 많이 빠지고 부모와의 관계도 무척 좋아졌다.

지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여전히 아버지는 병원에 있지만 미영이는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서 학교도, 학원도 잘 다니고 있다.
“최근에 e월드에도 함께 갔었는데 ‘선생님 너무 반가워요, 제가 가지고 온 간식인데 드릴게요’ 하면서 음료수를 건네주더라고요. 별거 아니지만 크게 감동 받았어요. 변화하는 게 너무 예쁘고요.”

그런데 문득 달서구청에서 대학생드림봉사단 멘토링을 운영하는 데 쓰이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 지 궁금해졌다.
“교통비 2만 원, 교재비 1만원, 최대 3만원까지 나가는데 너무 적어서 보수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활동비 없다고 말하거든요. 그런데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밖에 행복나눔센터는 대기업 등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에 공모하거나 인근에 위치한 지역 기반 기업들의 후원을 통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꼭 현금이 아니더라도 공연, 학원서비스 등 활발한 후원이 일어나고 있다며 지역민들의 참여열기를 자랑스러워했다.
통일과 통일교육, 아무래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안유경 사회복지사는 올해 북한이탈주민과 멘토간 결연식을 하려고 했지만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맞벌이를 하는 데다 외부에서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심지어는 아이가 북한에서 온 것을 모르기 때문에 공개하고 싶지 않다며 주저했다. 이에 연말에 간단한 시상식을 열어 열심히 활동한 멘토 멘티들에게 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또한 멘토링의 경우 “아동이 원치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멘티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원하려고 한다”며 “내년에도 북한이탈주민들의 자녀 중 멘토링이 필요한 애들이 있다면 정원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이들이 문화적 차이로 인해 한국에 와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 혜택이 될 수 있도록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멘토 박현희 씨는 할머니가 북한분이어서 북한이탈주민이 멀게 느껴지거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할머니는 아직 외가가 북한에 남아있기 때문에 이산가족상봉을 신청 했지만 혈육을 찾지는 못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제 기억도 안 난다며 북한에 있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데, 내색은 안하셔도 고향이 그립지 않을까요?”
현희 씨는 통일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직접 북한이탈주민들과 부대끼며 살아보니 통일은 꼭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선영이가 물어보는 거예요. 선생님은 형제가 몇 명이에요? 저는 위에 언니가 두 명 있고 오빠가 한 명 있대요. 선영이 엄마는 북한에 두고 온 자녀들 때문에 아직도 우울증 약을 드시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원욱 씨는 공익근무를 마치면 초등학교 교사로 돌아간다. 그래서인지 통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교직에 있을 때도 통일안보교육의 일환으로 글짓기, 포스터 그리기 등을 했는데, 애들이 멋있게 예쁘게 그리려고만 하지, 의미에는 관심이 없어 해요.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그는 “통일된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하는 세대가 지금 자라는 애들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통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통일의 당위성을 느끼도록 체계화된 통일 교육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기자희 / 사진. 기자희, 달서구청>

달서구 주민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자원봉사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