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다 |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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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라남도 해남군에는 아홉 가구의 북한이탈주민이 있고,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는 ‘홍반장’, 강동일 회장이 있다. 강 회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이 거주할 집을 얻어주거나 직장을 알선해주는 등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손발이 되어준다.
“북한이탈주민이 해남에 오면 경찰서 정보과에서 방 하나 알아봐 달라고 먼저 연락을 해요. 그러면 형편에 맞게 방을 얻어주기도 하고 사무실 지하에 TV나 냉장고, 생필품들을 모아놨다가 직접 가져가 설치도 해줍니다. 얼마 전에는 겨울 화재에 대비해 소화기 10대를 해남소방서에서 기증받아 놨어요.”

강동일 회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을 도울 때 ‘내가 보증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보증할 테니 일을 가르쳐 달라’, ‘내가 보증할 테니 꼭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빌려줘라’, ‘내가 보증할 테니 아플 때 병원에 오면 새벽 두시든 세시든 돌봐 달라’고 말한다. 친구인 이장에게도 북한이탈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살펴서 도움을 주고 쌀 등 보급품이 있으면 이들에게 나눠달라고 일러 놓는다. 강 회장은 “내가 당장 달려가지 못하더라도 여기저기에 연결고리를 심어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튼튼한 관계망을 만들어뒀다”고 말했다.
강동일 회장은 우리나라에 ‘북한이탈주민돕기운동’이 아직 없었을 때 자진해서 이들에게 가족처럼 다가갔다. 1998년 국군포로 제2호로 박동일 씨가 가족 네 명을 데리고 김포공항에 왔는데, 민간단체로는 국내 최초로 자매결연을 맺고 남한 안착을 도왔다. 박동일·허영숙 씨 부부는 탈북으로 인해 6명의 자녀 중 4명을 잃었다.

박동일 씨의 아내 허영숙 씨는 “난 자식들이 많소. 그런데 정치범 수용소에서 다 잡아갔소. 중국에 데려온 자식까지 다 잡아서 가져갔소”라며 울음을 터뜨렸고 박동일 씨는 “내가 죄인이지. 자식들이 얼마나 원망하겠소. 내가 오지 말았어야 했소”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금세 울음을 그친 할머니는 “해남에서 도움을 많이 줘요. 김장철이면 김장을 해다 주지, 부식물도 많이 신세를 지고 있지, 견학도 데리고 다니지”라고 말하며 강동일 회장의 손을 꼭 잡았다. 강 회장은 이들 부부의 가슴 속 빈자리 메워주기 위해 새로 전입한 젊은 북한이탈주민들을 소개해주면서 부모로 모실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함께 탈북한 박동일 씨의 며느리와 이후에 한국으로 넘어온 며느리의 형제에게 ‘유통’사업 아이템을 알려줘서 물류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강 회장은 그를 유통회사에 취직시켜서 사업 운영방법과 이윤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줬다. 그 결과, 현재는 43명의 직원과 함께하는 중소기업 H물산을 일궜다. 특히 직원들 가운데 38명이 북한이탈주민들이어서 더 뜻 깊다. H물산은 강 회장이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 기꺼이 후원을 하곤 한다.

그밖에 강 회장은 6년 전 남한으로 건너온 A씨가 2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무일푼으로 쫓겨날 처지가 되었을 때도 법원을 통해 위자료를 받도록 해주었다. A씨는 현재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새 주공아파트로 이주할 기회를 얻었다. B씨는 손에 장애가 있지만 강 회장이 카센터에 취업을 알선해줘서 기술을 배우고 있다. C씨는 대인기피증이 심해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꺼려하지만 강동일 회장에게만은 마음을 열고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강동일 회장은 해남군에 북한이탈주민이 전입해 오면 먼저 지역 주민들을 설득한다.
“다문화가정은 동남아 가족들과 수시로 영상편지나 통화를 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오도가도 못 한다”며 다 함께 관심을 갖고 도와줄 것을 당부하는 것. 또한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내고장 알림운동’을 통해 해남지역의 문화유산과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으며, 여수 북한잠수정박물관 등도 둘러보며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다.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질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평양에서 남한으로 온 D씨가 연금이 너무 적다며 불평을 하자 강 회장은 “해방 이후 배고프고 어렵게 살면서 나라를 부자로 만든 남한의 어머니들보다 훨씬 많이 받으면서 왜 불평을 하느냐”며 “해남 들녘에 나가서 일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루에 5~8만 원은 벌 수 있는데 보조금만 받으면서 적다고 해선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아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강동일 회장은 정부에도 건의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오는 북한이탈주민들을 곧바로 도시의 산업전선에 배치하지 말고 농촌에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배가 고파 남한에 왔기 때문에 농촌에서 3~5년 정도 지낸 이후 적성이나 특기에 맞춰 도회지로 진출시킨다면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도 풍요로워지고, 이들도 배불리 먹으면서 ‘노력한 만큼 소득을 얻는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을 대할 때 일회성 봉사에 그치지 말고 수시로 그들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보듬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하면 그들도 마음대로 행동하거나 일탈하지 않으며, 남한의 예의와 준법을 알려주면 ‘감사할 줄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봉사하려는 노력이 바로 통일로 가는 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남한으로 넘어오고 이들이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하다 보면 통일이 되는 거지요.”
강 회장은 북한이탈주민 정착촌을 만들어줄 것을 해남군에 건의했다. 그는 이 사업이 북한이탈주민의 안착을 돕고 해남군민 인구도 늘리는 일석이조의 아이템이라고 지자체 관계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민주평통 해남군협의회 사무실에는 형형색색의 펜으로 적힌 꽉 찬 스케줄표가 걸려있었다. 강동일 회장은 평소 활동량이 일반인의 2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한때 24개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18개 단체로 줄여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강 회장. 그는 해남중고등학교 육성회장을 비롯해 초등 중등 축구부, 레슬링부, 사격부, 육상부, 펜싱부의 육성회장을 맡아서 후원하고 있다.
또한 2년 전에는 600명의 청소년들과 국토대장정에 나서 현장학습을 다녀왔으며, 해남군에 위치한 군부대의 협조를 통해 청소년 체험학습, 자문위원 사격대회, 축구대회, 안보 강연을 예약해 뒀다.

작년 6월에는 중국 길림성 청소년 축구단과 자매결연을 맺어 후원을 시작했다.
강 회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이 함경도에서 넘어 오면 길림성으로 오기 때문에, 이들을 도우면 통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일 회장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땅끝 해남 첫 땅에서 시작되는 통일의 바람’이라는 슬로건으로 추진한 민주평통기(旗) 달기 사업이다. 해남터널 왕복 진입로와 삼산면 광천교 수변로 등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군집기를 게양한 강 회장은 이를 통해 군민뿐만 아니라 해남 방문객들에게 민주평통을 알리고 통일가치를 확산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또한 지난해에는 통일역량강화 연수를 통해 중국 백두산을 탐방, 통일 역사 유적지 등을 돌아보고 80만 명이던 길림성의 인구가 현재 40만 명으로 줄어든 것을 보며 ‘텅텅 빈 길림성의 모습이 해남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상기시켜주면서 북한이탈주민 전입을 통한 인구 늘리기 사업의 필요성을 재차 확인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4월에는 국가를 위해 7천 명이 희생했던 월남전 현장을 방문, 고엽제 피해자 2세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남군과 민주평통이 같이 참여해서 고구마지원사업도 하게 됐다. 13기 때도 이 사업을 했는데 검열을 받는 기간이 길어져 순의 신선도가 떨어졌고, 토질도 잘 맞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식량공급용 종자를 골라 최대한 식량난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강 회장은 “민주평통 자문위원들 모두 농촌의 일꾼들이기 때문에 단지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둘 게 아니라 작업복 갖고 가 직접 심어주면서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38선이 가로막혀있기 때문에 통일의 바람은 위로부터가 아닌 해남 땅끝에서부터 시작돼야 하고, 이순신장군의 기상을 받들어 신의주, 백두산까지 천지를 흔드는 기세로 올라가야 합니다.”
강동일 회장의 이러한 평소 소신은 ‘통일염원수’라는 아이디어로 구체화되었다. 학생들이 국토순례를 할 때 대한민국 최남단에서 정제된 마지막 물, 즉 통일염원수를 마시며 임진각으로 간다는 것. 학생들이 임진각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면 통일에 대한 염원도 더 깊어질 것이라는 게 강 회장의 생각이다.

강동일 회장은 민주평통 자문위원이라면 통일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갖고 발로 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뢰와 봉사하는 삶 자체가 그게 바로 통일로 가는 길이이지요. 해남군이 통일에 앞장서서, 땅끝에서 부는 바람을 열심히 만들어서 북쪽으로 계속 힘차게 쳐 올라가겠습니다.”
<글, 기자희 / 사진. 나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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